고양이는 유별나게 조심성이 많은 동물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고양이 조상이 살았던 서식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다. 고양이 조상은 사막지대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태양이 작렬하는 낮시간을 피해 해질녘이나 새벽 동틀 무렵에 주로 활동하고 사냥을 한다. 낮 동안 작렬하는 태양열을 피해 돌틈이나 굴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현대의 집고양이들도 밤 시간대 주로 활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양이는 포식자라 하기에는 몸집이 작다. 작은 들쥐나 새 정도를 사냥하는 중간 포식자에 불과하며 오히려 더 큰 포식자에게는 한낱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는 항상 경계하고 숨어지내야 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를 피해 어두워지면 사냥을 시작하며, 그나마도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까 항상 조심스러한다. 현대의 집고양이들도 이러한 조심성은 각인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고양이는 독립 생활에 익숙하다. 어미의 보호를 받는 동안은 어미와의 유대가 끈끈하지만 성숙이 본격화되는 시기부터는 확연히 경쟁하며 독립한다. 무리를 지어 사냥하고 더 큰 포식자에 대항하기 보다는 혼자서 숨어지내며 조용히 생존하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자신의 영역을 수시로 표시하여 자신의 영역 내로 들어오려는 고양이에게 경고를 보내고, 그럼에도 다가오는 고양이는 확연히 침입자로 규정하고 처절하게 대항한다.
현대의 집고양이가 집사에 대한 의존보다는 자신이 생활하던 집에 더 애착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사를 가거나, 가구가 바뀔 때면 유난히 고양이가 민감해지는 이유, 새로운 고양이를 합사할 때면 고양이간에 전쟁이 다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독립적이고 숨어지내기 좋아하며,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한 고양이 본성은 현대의 반려묘에게서도 여전히 본능으로 남아있다. 불안하거나 아프거나, 집사의 귀가 시간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고양이를 입양하는 등 환경의 사소한 변화에도 이러한 고양이 본능은 더 강하게 작용한다.
고양이 집사가 상담을 하는 사연들을 살펴보면 돌발적으로 변모하는 고양이 때문에 난감해하는 질문을 자주받는다. 착한 고양이가 호랭이로 돌변했다거나, 반대로 너무 우울해졌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고양이 눈병, 구내염, 고양이배뇨장애증후군을 호소하는 고양이 환자의 상당수도 이러한 심리적인 불안 상황에서 다발하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 집사의 한결 같은 소망이 있다. 천사냥이다. 시크한 고양이의 매력은 유지하되 집사를 잘 따르는 착한 고양이로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성향상 다투기 싫어하고 조용히 혼자 지내기를 선호하는 고양이는 불편한 상황만 주어지지 않는다면 좁은 방안에서도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고양이가 불편하고 분노할 상황만 피해주면 그만이다.
고양이는 다투기 싫어하고 조용히 혼자 지내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불편한 상황을 맞이하면 반드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나 한테 다가오지마', '여기서 나가줄래', '다가오면 싸울거야' 어떻게든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희망한다.
비명을 지르거나 하악질하는 등의 적극적인 표현을 하기에 앞서 다양한 몸짓 언어나 진동을 이용한 경계 신호를 보낸다. 고양이 언어를 침묵의 언어라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동자, 수염, 귀, 꼬리, 털 부풀림을 통한 몸짓 언어도 중요한 고양이 대화법 중에 하나이다.
그럼 고양이가 표현하는 다양한 언어들을 살펴보자
◆ 야옹(Meowing)
독립적이고 은둔형 습성이 강한 고양이가 소리를 크게 내는 건 새끼 때 어미를 찾거나, 발정기 암컷의 발정울음이 대부분이였다. 반려화 되면서 사람과의 상호 교감이 깊어지면서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야옹야옹', '이~~야옹', '미용'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고양이 언어이며, 맑은 톤으로 반복적으로 소리낸다면 편하고 호의적인 상태임을 의미한다. 집사를 향해 옹알거리 듯이 반복적으로 야옹거린다면 놀아달라거나, 먹을 걸 달라거나 뭔가를 집사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때로는 먼가 불편한 심기이거나 어딘가 아플 때 뭔가 간절한 듯 소리 높여 반복적으로 울기도 한다. 특히 저녁이나 새벽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족 모두가 난처해지기도 한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뭔가가 해소되어 주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소리낸다고 이해하시면 된다. 주변 상황을 잘 관찰해서 고양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잠들 시간 고양이의 요구성 울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잠들기전 충분히 고양이와 놀아주고 식사나 간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피곤해지면 잘 잘 수 밖에 없다는 간단한 이치다. 반면에 밤에 고양이가 보챈다고 간식을 제공하거나 놀아주다 보면 고양이 본래의 야행성 습성을 더 활성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르릉, 그르렁, 골골(골골송/purring)
고양이가 가르릉 몸을 떨며 진동하는 것을 골골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고양이를 쓰다듬어줄 때 골골송이 들리면 집사들도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골골송은 몸속 근육을 떨어서 내는 일종의 진동음으로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들은 어미의 가르릉거리는 진동음을 감지하여 다가오기도 한다. 그 순간 유즙도 풍부해지고 엄마 냥이가 한껏 안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안고 나지막히 자장가를 음유하는 효과와 유사하다.
고양이가 유아기 때부터 가장 행복하게 익혀진 소리여서 그런지 기분이 좋거나 만족감을 느낄 때, 행복할 때 골골송이 표현된다.
반면에 아프거나 불안할 때 골골송을 표현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긴장을 풀려고 표현한다는 가설이 있으며,노쇠하여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의 고양이에게서 관찰되기도 한다. 실제로 골골송의 진동 파장을 분석하여 치료학적 효능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 케케 (채터링/chattering)
채터링은 주로 고양이의 초 집중 상태일 때 나타나는 표현 언어다. 사냥 시 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채터링을 통해 자신의 몸을 준비하고 긴장을 푸는 효과를 가진다. 사냥 중에 빠른 반응과 더 정확한 동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채터링은 고양이의 흥분과 흥미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잡을 수 없는 새를 올려다보거나 가지고 싶은데 못 가지는 장난감이나 간식을 보며 내뱉는 귀여운 투정 같은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려화되어서인지 이러한 표현을 하지 않는 고양이도 많다.
◆하악(hissing)
고양이의 하악질은 주로 방어적인 경계 행동이나 위협을 표현으로 사용되는 언어다. 혀를 말아 공기를 내뿜으며 내는 소리이며, 경고성 메시지라 이해하면 된다. 하악하며 귀를 젖히고 수염을 내밀고 몸털을 세운다면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정작 전투적인 고양이는 으르렁 거리거나 소리없이 공격을 감행하는 반면, 하악질을 많이 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많고 상대적으로 약한 고양이가 '제발 다가오지 마' 라며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내뱉는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으르렁(growing)
고양이가 으르렁댄다면 공격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진동음 같은 울림이어서 사람이 곁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몸털을 부풀린 채 으르렁 거리며 주변을 천천히 배회한다면 여차하면 공격하겠다는 강력한 태세를 의미한다.
공격적이고 강한 힘을 가진 고양이일수록 공격하겠다는 확연히 경고보다는 적당한 경고 후에 곧 바로 응징해버리는 경향이 있음을 주의해야한다. 싸움에 익숙한 수컷 골목대장 길고양이들이 이러한 경향이 많다.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고양이와 대치 상황에 놓였다 면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고양이 합사 과정에서 이러한 고양이들 간의 성향과 상호 표현 언어들을 오해하는 과정에서 기존 고양이와 새로 입양한 고양이 간에 전쟁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 콜링(mate calling)
발정기 수컷을 유혹하는 암컷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다. 발정기 울음 소리는 늦은 밤 아기 울음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가족들이 밤잠을 설치며 이웃들의 항의를 받는 주된 문제가 된다.
암컷의 발정기는 교미가 이루어질 때까지 반복되므로 고양이 또한 스트레스가 크다. 고양이 건강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중성화 수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성화수술은 발정기가 도래하기전 생후 7-8개월령이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이미 발정기가 도래한 상황이라면 수의사와 상담하여 수술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 눈 대화
고양이는 눈을 깜박이거나 눈동자의 산동과 축동을 통해 상대와 대화하기도 한다. 눈동자가 산동되어 검은 눈동자가 둥글게 확장되면 우호적인 기분 상태를 반대로 눈동자가 축동 되어 좁아져 있다면 두렵거나 화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고양이들 간에는 이러한 미세한 표현 언어들의 혼선이 발생한다. 그래서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던 고양이들 간에 합사를 하다 보면 서로의 표현 언어를 오해하여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들을 줄이기 위해서 합사에 앞서 충분히 상대 고양이를 지켜볼 수 있는 격리 기간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간의 표현 방식을 잘 이해해야 갈등이 줄어드는 이치와 같다.
낯선 고양이와 대면했는데 고양이가 정지 동작으로 상대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은 경계심이 매우 고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다면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선을 살짝 돌려 눈을 천천히 깜빡여 주는 것이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너에게 도전하지 않아라는 표현을 의미한다.
경계심이 많은 고양이와 대면할 때 상대 고양이를 마주보지 않고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느 순간 고양이가 다가와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섣불리 손을 내밀지 않아야 하며 고양이가 탐색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몸을 부비부비 비비기 시작할 때 쯤 다정한 말투로 응대해주는 것이 고양이와 친해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귀 언어
고양이 귀가 전방으로 위치하면서 귀 내측 면이 양방향으로 향해 있다면 비교적 호의적인 관심을 의미합니다. 귀를 세운 채 귀 안쪽 면이 전방을 향해 있다면 긴장 상태에서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귀가 후방에 위치하고 귀 내측면이 양방향으로 향해 있다면 두렵거나 여차하면 공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꼬리 언어
고양이 꼬리 언어는 개의 표현과는 사뭇 반대로 표현한다. 개의 경우 경계심이 고조되면 꼬리를 세우고 긴장한다. 고양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며 꼬리를 바짝 쳐들고 다가간다면 호의적인 표현이다. 꼬리를 바짝 든채 꼬리 끝이 살짝 굽어져 있다면 기분이 좋다는 표현이다. 이때 꼬리 끝부분을 살랑살랑 흔들기도 한다.
반면에 만약 꼬리를 좌우로 빠르게 흔든다면 짜증 나고 귀찮다는 표현이다. 고양이가 꼬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바닥을 탁탁 친다면 짜증스러움을 넘어 화났음을 의미한다.
좀더 디테일 하게 살펴보자면 집사가 고양이를 불렀더니 꼬리를 세우고 꼬리 끝 부분만 살짝 흔드는 행동을 보인다면 대답은 하지만 굳이 다가가고 싶지는 않다는 정도의 표현이다.
고양이가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춘다는 것은 심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털이 부풀린다면 자신의 몸을 더 크게 보여 상대를 위압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되면 여차하면 싸우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고양이가 꼬리를 바닥에 스치듯이 꼬리 끝 부분을 살랑 살랑 흔드는 것은 긴장 상태를 의미한다. 이 때는 고양이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양이 언어를 이해하면 고양이가 굳이 화내거나 다툴여지를 줄일 수 있다. 이 자체 만으로도 고양이는 순해진다. 반면에 고양이의 은밀한 언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양이를 대하다 보면 고양이나 집사 모두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자칫 집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호랭이로 돌변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고양이와 집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집사는 고양이 언어를 잘 익혀둘 필요가 있다.
박순석 수의학박사
한국임상수의학회 부회장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사) 한국동물복지표준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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