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개인 가족사에 스며든 이데올로기의 단면…김미련 작가 ‘안개의 그림자’

7월 9일까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

김미련 작가가
김미련 작가가 '안개의 그림자' 작품이 상영되는 모니터 앞에 섰다. 이 작품은 360도 VR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연정 기자

김미련, 안개의 그림자, 2022, VR 3D 영상설치, 4분(협업 애니메이션: 손영득). 봉산문화회관 제공
'기억공작소-김미련 전'이 열리고 있는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조선시대 문신인 학봉 김성일의 15대 자손이다."

VR 헤드셋을 끼는 순간, 평범하고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우리를 과거의 세계로 이끈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김미련 작가의 할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월북했던 얘기를 들으며 안개가 가득한 철책선 사이에서 할아버지의 시간에 몰입하게 된다. 360도 상하좌우를 둘러보며 실감 체험을 하는 4분 가량의 영상 속에는 연좌제 등에 얽힌 작가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는 모두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바닥에 놓인 전투화들은 전투 후 시체는 썩어 사라지고 신발만 남아있었다는 얘기에서, 귀 모양과 애드벌룬, 초소 등은 항상 감시 당했던 공포에 대한 얘기에서 만들게 됐죠.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그러한 현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왜 더 엄격하게 우리를 대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는 높이 5m의 황마끈이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S자 형태로 전시장을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시켜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인식의 경계를 지어놓은 것. 커튼 안쪽에서 과거의 얘기를 담은 VR 체험을 마치고 나오면 현실을 그려낸 전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안동 내앞마을, 영주 가지산, 인제 대암산 용늪 등 할아버지가 월북했던 좌표를 따라 식물 생태계를 기록한 스캐노그래피 작업,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시간을 표현한 영상 작업, 국가보안법 위반 공소장을 풀로 두껍게 쌓아 붙여 사포로 갈아낸 입체 작업 등을 볼 수 있다.

김미련, 안개의 그림자, 2022, VR 3D 영상설치, 4분(협업 애니메이션: 손영득). 봉산문화회관 제공
'기억공작소-김미련 전'이 열리고 있는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전시 동선을 따라 나타난 수많은 메타포(은유) 속에서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 민족에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며,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특정한 집단 이익과 편향성이 삶에 스며들어 어떠한 오해와 갈등을 야기하는지. 작가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분단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 작가는 "개인적인 가족의 서사를 통해 안개처럼 뿌옇게 실체가 묘연하면서도 무겁게 드리워진 불안의 정서와 무의식의 세계를 관람객들이 VR 영상을 통해 탐험하고 엿보며,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또다른 감정, 질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동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가 다소 무겁고 우리의 삶과 관계없는 과거의 얘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도 어쩌면 일상 속에서 겪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 민족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냉전시절 이데올로기 갈등,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에서 파생되는 아픔, 그리고 지금도 주변의 불합리한 일들에 침묵하는 나약함 등을 담고 있다"고 했다.

봉산문화회관의 기억공작소 두번째 전시 '김미련전-안개의 그림자Ⅱ'는 4전시실에서 7월 9일까지 4전시실에서 이어진다.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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