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체자 명단에도 있었는데, 이 학생은 아무래도 여기 안사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17일 오후 2시쯤 찾은 경산 정평동의 한 아파트. 아파트 현관 앞에서 수성구 고산도서관 직원 두 명이 몇 호의 호출버튼을 몇 차례 눌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들은 도서관 장기연체자에게 책을 받으러 온 터. 해당 연체자는 10대 학생으로 어린이 도서 5권을 지난 470일 전부터 반납하지 않고 있었다. 응답은 끝내 없었고 직원들은 다시 발걸음을 되돌려야했다.
고산도서관은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도서 장기 연체자를 대상으로 직접 책을 반납 받으러 나갔다. 장기 연체자 자료를 추출해 일부를 선정한 뒤 미리 문자로 연체 책을 받으러 간다고 문자로 사전 고지했고 방문 수거 이틀째인 17일, 이날 수거 대상자 10명 중 9명은 다행히 책을 스스로 반납했다. 응답이 없던 이에 대해 직접 집 방문을 실시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고산도서관 직원은 "사실 직원들이 방문해서 책을 반납 받는 경우는 잘 없다. 아무래도 직원이 책을 가지러 방문까지하면 이용자 입장에서도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니 배려로 방문 전부터 문자로 고지를 충분히 안내한다"며 "그럼에도 반납을 하지 않은 이들은 아예 책 반납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연체 자료도 도서관의 소중한 자산이라 피해가 큰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매년 도서관 연체 도서와 연체자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대구시내의 각 도서관들이 연체 도서를 반납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책을 30일 이상 반납하지 않은 장기연체자들도 다수면서 도서관들은 '연체 해방의 날'이나 '방문 수거'등 갖가지 방법에 나서면서 책을 돌려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구 주요 도서관 연체율 증가 추세
지난 3년 간 대구시의 주요 시립·구립 도서관의 연체자 수·연체도서 비율(1일 이상 연체를 한 경우 기준)은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도서를 1일 이상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자, 연체도서로 분류되며 미반납 기간이 30일 이상이 되면 '장기 연체자'로 분류된다.
대구 중앙도서관의 연체 도서 비율(전체 대출도서 대비)은 지난 2020년 20.0%에서 2021년 21.0%, 2022년은 23.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연체자 비율(전체 도서 대출자 대비)도 9.6%, 10.7%, 10.9%로 늘었다.
각 구·군의 시·구립 도서관 상황도 마찬가지다. 남구의 시립 남부도서관의 연체율은 2020년 19.14%에서 2022년 19.69%로, 연체자율은 같은 기간 20.20%에서 18.94%로 소폭 증감 추세를 보였다. 구립 이천, 대명 도서관의 연체율은 16%(2020년)→18%(2022년), 6.6%→16.7% 늘었고 연체자도 동기간 각각 49%→52%, 40%→43% 증가했다.
이외 ▷달서 시립 두류도서관은 연체율 15.0%→16.9% / 연체자율 17.5→18.6% ▷서구 시립 서부도서관은 연체율 16.9%→13.8% / 연체자율 16.1%→18.4% ▷수성구 시립 수성도서관은 연체율 0.3%→1.6% / 연체자율 0.4%→1.08% 등이다.
대구의 한 도서관 관계자는 "요즘은 도서관 전산망이 통합됐기에 어느 한 구에서 장기 미반납 연체자로 분류되면 다른 지역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릴 수 없다. 이 시스템이 생기면서 연체자와 연체도서 비율이 감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연체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한 상황이다"고 했다.
◆연체자 찾으러 출동하지만 묵묵부답…연체 사면의 날 이용하는 이들도 多
연체 도서를 반납받기 위해 대구시 각 도서관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도서관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3·5·7·9일 연체의 경우 이용자에게 자동으로 연체 안내 및 반납 요망을 위한 자동문자를 보낸다. 연체 기간이 열흘 이상부터는 직원들이 직접 나선다. 전화를 걸거나 1년에 2번 이상 변상 통지서나 연체 반납을 위한 편지를 보낸다. 그래도 연체자료가 도착하지 않으면 직접 책을 반납 받으러 나가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연체자와 만남도 녹록지 않다. 아예 응답을 하지 않는 연체자도 많은 반면 오히려 "이 책 고작 얼마한다고 나를 범죄자 취급하느냐"고 되레 화를 내는 연체자도 있다. 혹은 장기연체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면 만남은 피하고 아파트 경비실 등에 맡겨놓는 경우도 있다.
말이 바뀌는 경우도 상당수다. 여러 권을 빌렸다가 모두 반납하지 않은 이용자들은 처음에 '잃어버렸다', '변상하겠다' 하다 갑자기 '빌린 적 없다'는 식의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외 각 도서관에서 연 1~2회 '연체 해방의 날'을 지정해두기도 한다. 4월 도서관 주간이나 도서관 재개관 기념 등 각종 의미 있는 날을 맞아 장기 연체자의 대출정지를 해제 시켜주는 것이다.
도서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의외로 이 기간을 이용해 연체 해제에 나서는 이용자들도 상당수다. 대다수는 멋쩍은 듯이 연체 도서를 들고 도서관을 찾아와 대출정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북구 구수산 도서관 관계자는 "지난해 구수산도서관 재개관 기념에 맞춰 9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간 연체자 사면 행사를 진행했다. 이 기간에 무려 192명의 이용자가 연체 사면을 받았다"고 했다.
◆연체 많을수록 도서관 부담 커‥"반납 잘 지켜주길"
연체 도서가 많을수록 도서관과 다른 이용자의 피해가 큰 것은 당연지사. 도서관의 경우 보통 책 구입 시, 한정적인 예산을 고려해 같은 책을 1~3권 단권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책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연체도서가 발생하면 도서관은 새 도서를 사지 못할뿐더러 이용자도 해당 책을 읽지 못하는 피해를 받는다.
연체 도서를 관리하는 도서관 직원들의 업무 부담도 상당하다. 특히 방문 수거를 하는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거나 이용자가 겁을 먹을 경우도 고려해 남녀 직원 골고루 섞어 팀을 이뤄 집을 찾는다. 하루에 10곳의 집을 방문해야한다면 이동거리 등 최소 4시간 이상은 시간을 잡아야한다는 게 다수의 도서관 측 설명이다.
고산도서관의 연체도서 방문 수거에 나선 한 직원은 "마지막 날 직원들이 받은 2개 도서는 연체 184일 된 책이었다. 해당 도서를 반납처리 하니 도서관 돌아와서 반납처리 하니 책 두개다 모두 예약자가 있었다. 예약하신 분들은 100일이 넘어서야 예약 신청했던 책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어 "책이 진짜 필요하고 책을 빌릴 시기에 연체(특히 장기)가 돼있으면 다른 이용자가 책을 못 빌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소중하고 필요한 책일 수 있다. 연체 없이 반납을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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