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04> 세종 때 효자 유석진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석진단지(石珍斷指)', 종이에 채색, 21.7×14.7㎝, 삼성미술관 리움

오른쪽 위의 긴 네모 칸 안에 '석진단지(石珍斷指)'로 제목이 있고 '본조(本朝)'라고 가로로 적어 놓았다. "석진이 손가락을 자르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고, 본조는 '우리 왕조' 곧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뜻이다. 효자효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부모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석진은 실존인물이고 이 이야기는 실화다.

기계 유씨 유석진은 고산현 아전이었다. 아버지가 매일 발작을 일으키고 기절하는 병에 걸려 4년 동안 밤낮으로 간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악질(惡疾)이 낫지 않았다. 한 스님이 "산 사람의 뼈를 갈아 피에 타서 먹이면 나을 것"이라는 처방을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유석진이 왼손 무명지(無名指)를 잘라 그대로 했더니 아버지의 병이 다 나았다.

고산현 향교의 한 생도가 현감에게 이 효행을 알렸고, 현감은 전라도관찰사에게, 관찰사는 조정에 보고했다. 세종이 "그 문려(門閭)에 정표(旌表)하고, 그 사람의 이역(吏役)을 면제하게 하라"는 포상을 내려 이 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세종실록' 세종 2년(1420) 10월 18일자에 나온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정려비각의 석비에 "유명 조선국 효자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사헌부 지평 유석진지려(有明朝鮮國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司憲府持平兪石珎之閭)"로 새겨져 있어 600여 년 전의 이 일을 증거하고 있다.

이로부터 14년 후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친족 살인사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간행한다. 부위자강, 군위신강, 부위부강을 실천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모범적인 행실을 모아 알림으로서 충효열(忠孝烈)을 보편적 가치로 전파하려 했다. 여기에 유석진의 사적(事蹟)이 들어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삽화를 곁들였다.

세종을 모범으로 삼았던 정조는 '삼강행실도'와 중종 때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중국 사례를 모아 간행한 '이륜행실도'를 합본하고 재편집한 종합 수정판인 '오륜행실도'를 펴냈다. 석진단지도 다시 실렸다. 1797년(정조 21) 간행한 '오륜행실도'의 세련된 체제와 편집을 보면 정조시대의 출판문화 능력이 대단하고, 새로 제작한 150점의 삽화를 보면 도화서 화원들이 이야기와 이미지를 격조 있게 결합해 시각화한 실력이 실감난다.

'석진단지'는 '오륜행실도'의 목판화와 그림 내용은 같지만 붓으로 그린 채색화다. 제목과 그림을 보면 어떤 교화를 전달하려는지 금방 이해된다. 그러면서도 특정 내용을 재현하는 보조적 수단에 그치지 않는 회화 자체의 조형언어로서의 감상 가치 또한 넉넉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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