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신라(대구 중구 대봉로 200-29)에서 아키오 이가라시와 박두영의 개인전이 각각 열리고 있다.
홀 A, B의 아키오 이가라시의 개인전 '그리기, 지우기, 깎기'에서는 올해 85세의 작가가 60여 년간 천착해온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미니멀회화 작업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물감을 얹고 갈아낸 행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캔버스를 깎아내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표면의 질감과 모노톤의 색상은 단단하고 매끈한 돌이나 건물의 외부 마감을 연상케한다. 일부 작품은 깎는 과정에서 캔버스에 작은 구멍이 나거나 천이 벌어지기도 한다.
작가는 "회화의 표면을 만든다기보다 대지(大地)와의 접촉을 즐긴다"고 말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산으로 둘러싸인 작업실의 작은 빈 땅에, 여러 층의 색을 쌓은 롤 상태의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는다. 샌드페이퍼로 캔버스를 문질러 깎으면 프로타주 기법처럼 바닥의 요철이 고스란히 표면에 드러난다.
그는 작업 노트를 통해 "라스코의 벽화를 그린 태고의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바위 표면에 손으로 안료를 문지르는 일을 통해 그 너머에 있는 세계와 대화를 했다고 한다. 나 자신도 지면에 펼쳐놓은 캔버스의 표면, 이른바 '지상면'에 손을 대고, 새로운 시공(時空)의 도상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캔버스 작업뿐만 아니라 거대한 종이 위에 연필로 선을 반복해서 긋거나, 연필 드로잉을 갈아낸 작품도 볼 수 있다. 아키오 이가라시의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이어진다.
홀 C는 박두영 작가의 1980년대 사진작업 및 종이작업들로 채워져있다. 그가 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작업실 화재 등으로 유실되거나 훼손된 것들을 오랜 시간 수복, 재현한 종이작업 7점과 리프린트한 사진작업 10점이 전시됐다.
그는 청년 시절 '미술은 무엇이며 왜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시기 비트겐슈타인, 넬슨 굿맨, 붓다, 노장 등 동서양의 사상을 접하고 알게 되면서 '세계가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은 언어에 지배돼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 태도를 바탕으로 동시대의 개념주의 미술이나 전통의 인문 가치에 깊이 공감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작가적 탐구심과 의지를 볼 수 있는 작업들을 볼 수 있다.
갤러리 신라 관계자는 "전시 작품들을 통해 1980년대의 시대정신과 더불어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거점인 대구에서 활동한, 이른바 1970년대 현대미술제 이후 세대의 고뇌와 성찰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의 개인전은 오는 30일까지.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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