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국토의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87년 유엔환경계획의 세계환경개발위원회에서 공식화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이 이 법에 담겨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의미는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의미한다.
이 법에 의거해 국토개발사업은 기상, 대기, 토지, 소음 등 인간의 주거 환경뿐 아니라, 동식물의 식생활 환경에의 영향도 평가하고 그 피해를 저감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시 개발사업으로 영향을 받는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며, 요구가 있다면 공청회도 개최해야 한다.
그런데 주민은 누구인가? 주지하듯 국토개발사업에는 공적 예산이 투여되어 건설사가 돈을 벌고, 고용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지가나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등 경제적으로 당장 이익을 보는 주민들도 생긴다. 이들이 주민임에 틀림없지만, 지속가능한 개발을 요구하기보다는 끈끈한 개발 연대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발사업으로 서식처를 잃게 될 야생생물은 물론 생태환경의 유익을 누려야 할 미래 세대도 '주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금호강 사색이 있는 산책로' 조성사업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개최되었다. 대구 수성구청이 추진하던 산책로 조성사업이 낙동강유역환경청으로 시행 주체가 변경된 뒤, 170억 원 규모의 보도교까지 추가해 추진되고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서를 승인했고,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사업 시행 결정을 앞두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설명회 소식은 홈페이지 어디에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문의해 보니 수성구청에만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수성구 주민들이 자리를 채웠다. 보도교가 설치될 지역이 수성구이긴 하지만, 수성구 내 주택가와는 6㎞ 이상 떨어져 있다. 차를 타지 않고는 금호강 유역을 방문하기도 어려운 그들이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인정한 유일한 주민이었다.
필자는 설명회에서 본사업이 환경에 무슨 유익이 있는지 물었고,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환경을 보아서는 건설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설명회 장소를 가득 메운 수성구 주민들은 공사가 빨리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한 시의원과 추진단장도 사업이 무산되지 않게 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왜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는 설명회를 알리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공사 구간이 수성구인데 모르는 소리를 한다"며 야유했다.
환경부 직속 기관이 강을 파헤치는 국토개발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의아했지만, 공사 구간이 수성구이니 수성구 주민만이 당사자라는 발상도 동의할 수 없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명시된 주민의 권리란 거주 지역과 같은 행정구역 내 자연을 맘껏 훼손해서 좋다고 승인할 배타적 권리인가?
금호강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 유익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미래의 대구 시민들도 똑같이 금호강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시민이라면, 170억 원이 넘는 세금이 환경적으로 유해한 토목공사에 쓰이는 것에 의문을 갖는 시민이라면, 그들도 당사자 주민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제라도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존재 이유인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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