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민주당과 중화 사대주의

국민대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중화 사대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명백하게 대한민국의 주권을 유린해도 항의는커녕 잠자코 앉아 있었다. 민주당 수행원들은 한술 더 떠서 싱하이밍의 망언을 기록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싱하이밍 대사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한·중 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대만해협의 현상을 힘으로 변경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한 한국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고, 대중 무역적자의 원인은 한국의 탈중국화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겁박도 했다.

하나하나 따져 보자. 한국은 그동안 대만해협 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소위 '전략적 모호성'에 따라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이 심해지면서 한국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상황에서 '대만'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을 문제 삼을 수 있으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하는 입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당연한 판단이고 책무다. 우리가 오늘날 국가를 유지하고 이만큼 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 미국 등 우방국의 참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아 놓고,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나라를 모른 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한·중 무역적자의 원인이 한국의 탈중국화에 있다는 것도 소가 웃을 일이다. 사드 배치 때 멀쩡하게 영업하던 롯데마트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을 쫓아내고 한한령을 통해 콘텐츠와 관광객까지 모두 제한한 것이 중국이었다. 솔직히 사드 배치도 한미동맹 관계에서 한국에 어떤 선택권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중국이 그런 조치를 취했으면서 이제 와서 한국 책임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리고 작금 무역적자의 주요 원인은 중국의 봉쇄 조치로 인한 소비 부진에 따른 것이지 탈중국화와는 관련이 없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베팅한 적이 없다. 한국은 미국과 70년에 걸친 동맹관계에 있고, 한미동맹은 동북아 평화 유지의 근간이다. 중국은 6·25전쟁 때 우리를 침략해 통일을 방해한 국가지만, 미국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3만6천574명의 전사자를 낸 국가다. 지금도 미군 2만8천여 명이 이 땅에 주둔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평화를 지키고 있다. 만일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미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입장 바꿔 중국이 우리라면 어느 쪽을 지지하겠는가.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이지만 백보를 양보해 중국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치자. 한국의 주권을 비웃는 '베팅 망언'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도 한마디 항의도 못 하는, 아니 하지 않는, 이재명 대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만일 주한 미국대사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일행을 저녁에 불러 놓고 비슷한 소리를 했다면 민주당은 뭐라 했을까. 아마도 민주당은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장외 집회를 열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대사의 망언은 조용히 들으면서 필기까지 한다? 어째서 당신들은 그토록 선택적 인지에 빠져 있는가.

지난 2017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공항에는 국빈 방문임에도 장관도, 차관도 아닌 차관보급 인사가 문 대통령을 영접하러 나왔었다. 대통령을 국빈 초청해 놓고 이런 결례는 있을 수 없음에도 당시 민주당은 항의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취재하던 우리 측 카메라 기자 2명이 중국 보안 업체 소속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을 때도 민주당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측 보수 언론들이 대통령이 3박 4일의 방문 일정 중 중국 측 인사들과의 식사는 오직 두 번밖에 없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그것에는 격렬히 항의했다. 문 대통령이 베이징대에서 한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고 중국몽을 아시아, 나아가 전 인류가 함께 꾸는 꿈이 되기를 바란다는 사대주의적 발언을 비판하는 보수 언론을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민주당에 중화 사대주의의 피가 흐르지 않고는 결코 이럴 수 없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요구한다. 차라리 '커밍아웃'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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