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6·10 민주항쟁, 국민 분열 아닌 통합 계기로

4·19 민주화와 5·16 산업화를 통합하는 숙명적 과제
건국과 호국,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1-2-3 기적’

도태우 변호사(선진화 아카데미 원장)
도태우 변호사(선진화 아카데미 원장)

1987년 6월10일 대한민국 역사는 변곡점을 맞았다. 대학생과 넥타이 부대를 주력으로 한 시민저항은 6·29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1948년 건국헌법 제정 후 40년간 아홉 차례나 개정되었던 불안정한 헌법 체제는 87년 후 36년간 단 한 차례의 개정없이 선진국과 같은 헌법적 안정성에 비로소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최장집 교수와 같이 1987년의 민주화를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화, 반쪽 뿐인 민주화로 보는 시각에 익숙해져 왔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다음 단계인 실질적 민주화,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추진되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1987년 민주화의 유산이 자동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전혀 다른 시각은 1987년 민주화를 높은 단계의 법치와 민주주의 진입으로 보는 견해이다. 최대권 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 헌정사의 1단계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건국과 호국이고, 2단계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낮은 단계의 법치와 민주주의 시기이다. 초고도 성장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2단계와 병행되었다고 본다.

2단계의 포문을 열었던 4·19세대가 1987년의 변화를 이끈 숨은 주역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혁명으로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5·16에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진 듯했지만,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키워 낸 첫 한글세대로서 4·19세대는 1987년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지도원리로 삼는 개헌을 주도하며 4·19의 민주화와 5·16의 산업화를 통합하는 숙명적 과제를 완수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1987년에 이르러 산업화와 민주화의 흐름은 어느 정도 성공한 나라만들기의 과제를 수행한 뒤, 건국헌법의 적통 계승자인 제9차 개정헌법 속에 융합되었다. 그러나 1987년 헌법의 의미는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직선제 개헌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런 와중에 1987년 6월의 시민저항을 선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개헌을 낳은 역사의 장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국이념과 다른 체제로의 변혁을 지향하는 '미완의 혁명'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확산되어 갔다. 이런 시각은 건국 이래 끈질기게 대한민국 정통성과 체제를 부정하는 흐름과 닿아 있었으나 수십년 동안 그 본질이 가려져 왔다.

1987년 6월 9일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왼쪽) 열사와 영화
1987년 6월 9일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왼쪽) 열사와 영화 '1987' 속 이한열 열사 역으로 특별출연한 배우 강동원(오른쪽 위·아래) 씨 모습. 이한열기념사업회, 영화 '1987' 속 장면 갈무리. 매일신문DB

이런 시각에서 보면 1987년 6·29선언이란 민주화란 힘에 떠밀려 마지못해 이루어진 항복 선언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경험적 진실과 역사적 통찰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해석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체제 이행을 능동적으로 실행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호국, 산업화만이 아니라 민주화 또한 '제3의 기적'이었다.

1987년 6월에 이루어진 변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왜곡되거나 일면적으로 굳어지면서, 2016년 이후의 혼란이 잉태되었다고 여겨진다. 급기야 2017년 말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조문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개헌 시도가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 거세게 추진되었다. 반대로 정통 우파를 자처하는 일각에서는 1987년 헌법이 잘못된 타협의 소산인 '망국적 좌파 헌법'이라고 눈을 흘기게 되었다.

36번째 6·10항쟁 기념일을 맞아 '무엇을 위한 87년 6월의 시민저항이었나',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자 한 대분출이었나'를 건국이념과 자유민주체제 계승 발전의 관점에서 확고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국헌법의 성장이자 결실로서, 산업화와 민주화 흐름의 결정판이자 다음 단계인 선진 자유 통일의 기초로서 1987년에 개정된 현행헌법을 확고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아울러 이를 낳은 6월의 시민저항 및 6·29선언 양쪽을 함께 기릴 필요가 있다.

진정한 국민통합은 헌법적 국민통합이다.

도태우 변호사(선진화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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