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인공지능 삼국지 시대'가 열렸다. 미국 오픈에이아이(Open AI)사가 '챗GPT'가 첫선을 보인 이후 반년 사이 구글은 '바드(Bard)'를 출시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빙(Bing)'을 출시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코딩 작업, 논문 작성 등 깊이 있는 작업도 대신해주면서 '개인비서'라는 별칭도 붙었다.
고작 질문하고 답해주는 챗봇 서비스인데 개인비서씩이나 된다니, 얼마나 대단하길래? 매일신문은 지난 2월 20~30대 젊은 기자들이 주축이 된 '인공지능 TF팀(MAIT·메이트)'을 꾸려 이 낯선 개인비서들을 직접 써보기 시작했다.
◆ "개인비서야, 대구경북에 처음 온 20대 여성은 어디를 가면 좋을지 알려줘"
경기도 출신 매일신문 기자의 친구들이 대구에 놀러 오겠다며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앗, 그런데 기자도 대구에 온 지 이제 막 반년이 지난 '대알못'(대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 걸. 그래도 매일신문 기자의 자존심이 있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챗GPT·바드·빙의 힘을 빌려야겠다.
질문에는 '조건'을 붙여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대구경북의 관광 명소를 알려줘'가 아니라 '대구경북에 처음 관광 온 20대 여성은 어딜 가면 좋을지 알려줘'라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그냥 '대구경북의 관광 명소를 알려줘'라고 하는 것보다 '20대 여성'이라는 조건을 붙이면 보다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챗GPT는 20대 여성의 보편적인 요구를 잘 알고 답변했다. 챗GPT는 동성로 거리와 서문시장, 이월드를 추천하면서 트렌디한 상점, 맛있는 먹거리, 탁 트인 도시의 전망을 경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경북 쪽 관광지 역시 분위기 있는 카페 등을 추천했다. '20대 여성'이라는 조건을 붙이지 않고 그냥 관광지 추천 질문을 했을 때는 근대역사박물관을 추천했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20대 여성의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답변해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드는 챗GPT와 달리 '국립대구박물관'을 추천지에 넣었다. 바드는 이월드 83타워, 국립대구박물관, 김광석길, 서문시장 등을 추천했다. 세 개의 서비스 중 유일하게 국립대구박물관을 추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바드는 답안이 3개 이상으로 제시돼 더 적절한 대답을 선택할 수 있다.
빙의 답변은 독특했다. "20대 여성이 가볼 만한 대구경북의 관광지로는 육신사가 추천됩니다"라는 대답이 그랬다. 다행히도 빙은 답변의 출처를 밝히는 기능이 있어 확인해보니 한 블로그의 글이 전적으로 반영된 답변이었다. 공신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여기서 그치지는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대구관광안내'나 여행 사이트가 추천한다는 명소도 하이퍼링크와 함께 제시했다.
세 개인 비서가 추천한 관광명소들을 대구에 사는 20대 여성은 어떻게 평가할까. 28년간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는 한 여성은 "인공지능이 대답할 수 있는 가장 정석의 답변"이라면서도 "대구 여행지 추천을 검색하면 나오는 뻔한 대답"이라고 아쉬워했다.
◆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 문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관광지 추천 같은 비교적 가벼운 질문을 넘어 조금 더 깊이 있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변할지 궁금해졌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 문제는 대구경북의 뼈 아픈 현실이다. 이를 챗GPT·바드·빙은 어떻게 인지하고 있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줄까.
챗GPT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라고 질문해봤다. 챗GPT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이 아닌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책만 밝혔다. 유연한 근무시간, 육아휴직 등 가족 친화적 정책을 촉진해야 한다거나 의료 지원 시스템 개선, 이민 정책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지역 맞춤'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드는 질문의 방점이 '지역소멸'에 찍혔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라면서 귀농·귀촌 지원, 기업 유치, 지역 특화 산업 육성을 통해 인구 유입 정책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보건·복지 서비스 확대, 교육·문화 서비스 제공 등으로 지역 사회 서비스 강화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답했다.
빙은 챗GPT와 바드를 합친 듯한 느낌의 답을 도출했다. ▷일자리 창출과 근로 환경 개선 ▷청년 정규직 고용 인센티브 ▷중소기업 근로 여건과 임금 수준 제고 ▷장시간 근로 관행 타파 ▷유연한 근무 체제 도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다양한 인프라 확충으로 '지방도 있을 건 다 있다'라는 인식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답변도 내놨다.
◆ "대구경북의 미래 먹거리는 뭘까?"
경제 분야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대답이 나왔다. '대구경북의 미래 먹거리는 뭘까?'라는 질문에 막힘 없이 술술 대답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오산이었다. 아 참, AI 비서들은 하나 같이 '미래 먹거리'라는 비유적 표현은 소화하지 못했다. 갑자기 식용 곤충이나 배양육 등 미래 대체 식품을 알려줘서 당황했다. AI 비서에게 비유는 아직 고차원의 영역이다. '대구경북의 미래 산업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순화해서 물었다.
챗GPT는 대구경북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산업을 정리해서 읊어줬다. 대구경북이 역사적으로 섬유 제조 및 기계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IT·전자·의료 등의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미래 산업'을 물었는데 과거와 현재는 왜 알려주는 것인지 의아했다.
이유가 있다. 챗GPT는 2021년 9월까지의 데이터로만 답변을 준다. 그래서 미래 예측까지는 어렵다. 챗GPT 스스로 '2021년 9월 제 지식이 마감됐음으로 경제 및 산업 동향이 변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바드는 챗GPT보다 전문적이었지만 깊이 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대구경북은 바이오산업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우수한 인재가 많으며 유교·불교·민속 문화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관광사업의 전망도 밝다고 평가했다.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지역에나 적용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챗GPT와 바드와 달리 빙은 '미래 산업'의 뉘앙스를 정확히 인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구경북이 신규 국가산단 4곳을 확보해 미래산업 육성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대구시는 미래차와 로봇이 융합된 미래 모빌리티 산업과 반도체, 헬스케어,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등 5대 신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북은 원자력과 수소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에 집중하고 있고 안동시는 바이오 생명 국가산단으로 지정돼 바이오산업을 키워나갈 계획이라는 최신 소식도 밝혔다.
최병호 고려대학교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대화형 AI 서비스를 코딩 등 전문적인 서비스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나 흥미용으로 사용할 목적이라면 최대한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며 "여행이나 관광 중에 어떤 단어를 선택하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세 가지 서비스가 가진 한계도 뚜렷하다. 최 교수는 "챗GPT·바드·빙 등의 서비스는 한글이나 한국 문화에 관해선 학습이 부족하다. 한국 문화에 알맞은 최선의 대답을 해주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 세 서비스에 정답을 기대하면 안 된다. 이들의 답변은 확률일 뿐이다.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을 추려 답변하는 것이어서 정확성과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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