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새롭게 번역되어야 할 제목

여자의 일생(기 드 모파상/ 이동렬 옮김/ 민음사/ 2015)

이 소설의 원제는 '한 인생' 또는 '어떤 일생'이란 뜻이다(351쪽). 일본에서 윤색된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은 선점 효과가 강하여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모 인공지능은 이 작품 속 '여자'라는 단어는 '사회적 지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래서인지 이 문학작품은 고달픈 여성의 삶에 대해 "참아야만 한다"는 대중가요의 가사와 병치되기도 하였다. 독자중심 관점으로 텍스트를 들여다본다.

주인공 잔느는 소시민이 아니라 부유한 귀족의 딸이다. 다만 시대가 그들의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이 그녀가 낭만(浪漫)을 이루지 못한 이유였다고나 할까. 현재만큼은 아닐지라도 19세기 역시 낭만과 사실이 교차하는 변화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라면 누구라도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 속 잔느의 일생은 수녀원에서 시작된다.

남작의 딸인 잔느는 어려서는 부모의 영향을 받았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인 쥘뤼앙의 주도대로 살았다. 쥘리앙이 하녀 로잘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남편을 묵인한 것도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피코 신부의 중재 때문이었다. "자연의 약점에 대해서는 좀 아량을 베풀 필요가 있지요."(170쪽) 신부의 이 말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의 약점은 곧 자연의 약점이라는 것.

피코의 후임으로 온 톨비악 신부는 고전과 규범을 상징한다. 그가 쥘리앵과 백작 부인과의 불륜을 논의하였을 때도 잔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였다. 결국 분노한 백작에 의해 남편 쥘리앵은 죽고 말았다. 이후 잔느 일생의 주도권은 아들 폴에게로 넘어갔다. 아들은 도박과 여자에 빠져 도시를 전전하면서 잔느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이때 잔느를 구원해 주러 나타난 이는 하녀 로잘리였다.

"로잘리는 일주일 만에 푀플 성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체념한 잔느는 수동적으로 로잘리의 뜻에 따랐다."(303쪽)

한 번도 제대로 주도적인 삶을 살지 않았던 잔느. 그녀의 일생은 모파상에 의해 그저 '한 인생', '어떤 일생'으로 규정되었고, 일본에서 '여자의 일생'으로 윤색되었다. 이제 이 꾸며진 제목은 새롭게 번역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을 일컬어 기술이 규제를 추월하는 격변의 시대라고 한다. 변화의 시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장창수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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