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위선의 국회의원, 위악의 패션모델

이우호 서울 정치부 기자

이우호 서울 정치부 기자
이우호 서울 정치부 기자

정치인과 패션모델은 시간이 제한된 무대 위에 서 있다. 무대 위 이 순간, 최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운동선수처럼 수명이 짧은 패션모델은 언제나 자신의 직업에 점점 시간이 없음을 느낀다. 4년 계약직인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제한된 시간 내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초조함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두 직업은 자신만의 '브랜딩'(BRANDING)에 전력을 다한다. 다만 브랜딩 방법론에 있어 차이점이 극명하다. 국회의원은 위선(僞善)적이고, 패션모델은 위악(僞惡)적이다. 위선은 대중을 기만하지만, 위악은 적어도 직업적 소명 의식이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패션모델을 본받아야 한다.

패션모델은 위악적이다. 앞에선 화려하고 기가 세야 한다. 뒤에선 쇼에 서기 위해 철저한 식단 관리와 운동, 피부 관리, 쇼핑, 심지어 개명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철저한 준비 끝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백만 원이 넘는 명품 옷을 입고 런웨이에 선다. 그렇게 자신과 옷을 과시한다. 쇼를 마치고 강남과 청담에서 명품 브랜드 애프터 파티에 참석한다. 일반인들은 줄을 서서 클럽에 입장하지만, 패션모델은 VIP 전용 통로로 경호원 호위를 받으며 프리 패스를 한다. 일종의 '의전'인 셈이다. 수많은 눈길과 사회적 편견을 받으며 초청받은 역할을 다한다. 현실로 돌아와 5만 원짜리 티로 갈아입고 집에 오는 새벽길, 패션모델은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정치인은 위선적이다.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역경 극복 스토리와 도덕성으로 자신을 '브랜딩'하기에는 많은 정치인의 도덕률이 사회의 보편 윤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브랜딩 방법론이 위선이다. 가진 자를 비난하며 자신의 가난한 '소년공' 시절을 내세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작 경기도지사 시절 최고급 에르메스 로션을 썼다. '찢어진 운동화'를 내세운 가난한 국회의원 김남국 의원의 '코인 게이트' 사태도 위선의 대표적 사례다. 또 카메라가 비추는 곳에서 국회의원은 '의전'을 피한다. 이렇게 국회의원은 대중 신뢰를 얻고, 기만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저서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개인이 타인에게 자아를 '연출하는 공연'으로 설명한다. 고프먼의 이론에 비춰 보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국회의원의 위선은 쉽게 이해된다. 위악은 좀 복잡하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 '척'을 하는 약자의 방어기제이거나, 소명 의식을 위해 편견을 감수하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패션모델의 위악은 직업적 소명 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치인과 같은 무대 위 직업이지만, 패션이라는 그 본질에 충실해 무대를 빛내고 자신의 일상과 사진을 통해 한 발짝 앞선 감각을 대중에게 제시한다. 그 결과 서울은 이미 세계적 패션 도시로 선진국에서도 선망의 대상이다.

정치인도 이제 '위악의 용기'로 자신을 브랜딩할 줄 알아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에게 "대중보다 반걸음 앞서가야 한다"라고 했다. 대중보다 반걸음 앞선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지만 민심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할 줄도 알아야 한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실업 위기에 처한 월풀 노동자를 만나 "공장 문을 닫는 건 불가피하지만 더 나은 고용 환경을 만들겠다"며 있는 그대로 말했다. 월풀은 문을 닫았지만 그 자리에는 전기차 제조 공장이 들어서 새로운 고용을 창출했다. 연금 개혁·노동 개혁 등 당면 과제가 산적한 지금 이 순간, 한국 정치인의 '워킹'은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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