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신상필벌(信賞必罰)

장성현 사회부 차장
장성현 사회부 차장

책상 위에 붙은 '대구광역시 직위표'가 또 바뀐다. 지난해 7월 민선 8기 출범 이후 11개월 사이 벌써 다섯 번째다. 그동안 조직 개편도 4차례나 있었다.

잦은 인사 이동에 제자리를 지킨 국장급 간부들은 극소수다. 대구시가 미래 50년을 준비하는 시정 목표에 따라 신설된 조직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국장급 간부는 단 1명이다.

주요 간부 중에는 3개월 만에 자리를 옮긴 이도 있었고, 길어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업무 파악은 고사하고 해당 실·국 구성원들의 얼굴도 익히기 전에 자리가 바뀌기도 했다.

반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인사 원칙 아래 이뤄진 좌천성 인사도 수시로 이뤄졌다. 국장 '직무대리' 신분으로 있다가 다시 과장급 간부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고, 10개월 동안 다섯 번이나 자리를 바꾼 간부도 있었다.

그동안 조직 개편도 자주 있었다. 지난해 7월 민선 8기 출범 직후 대대적 조직 개편에 이어, 한시 기구 설치와 민선 8기 핵심 정책 추진 등을 위해 주요 기능을 보강했다.

신공항특별법 통과와 군위군 편입 등 신규 행정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자 인력을 재배치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도 2개 본부 신설과 실·국 업무 조정 등을 이유로 조직을 개편했다.

과거보다 '직무대리'가 늘어난 점도 눈길을 끈다. 15일 현재 대구시 국장급 간부 23명 가운데 직무대리는 무려 10명이다.

14일 승진 인사에서 2·3급 간부 2명이 '직무대리'를 면했는데도 그 정도다. 지난 5월 인사에서 과장급인 4급 직무대리로 임명된 간부들도 10명이다.

홍준표 시장은 과거 경남도지사 시절부터 '직무대리'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직무대리로 자리를 맡겨 일단 업무 역량을 본 뒤 승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확고한 '신상필벌'은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적절한 긴장감은 업무 성과에 대한 의욕을 높이고 잘 해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긴장감이 지속되면 사람은 대체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기 방어기제를 드러낸다. 눈앞의 성과에 매몰돼 일을 그르치거나, 아예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번아웃'에 빠지기도 한다.

일부 국장급 간부들은 실제 무기력함을 호소했다. "보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간부들이 인사 조치될 때는 엄청나게 긴장했는데, 그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니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다.

느슨한 조직의 고삐를 바짝 당겨 쥐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평가는 동기 부여와 함께 대단한 추진력을 더해 준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면, 모두가 수장의 눈치만 보게 된다. 이는 조직의 안정성과 활력을 모두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엄정한 '신상필벌'은 모두가 인정하는 지도자의 덕목이다.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벌할 만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원칙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성과를 수치로 정량화하기 어렵고, 자신의 귀책이 아닌데도 질책을 받는 경우가 많은 공직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필벌'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모두에게 납득되려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빠른 판단과 냉정한 결정이 중요한 만큼, 누군가에겐 증명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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