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추억이라는 힘

김민지 아양아트센터 공연기획·홍보담당

김민지 아양아트센터 공연기획·홍보담당
김민지 아양아트센터 공연기획·홍보담당

얼마 전 우연히 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나의 무용수 시절이 생각나 뭉클해진 기억이 있다. 프로그램은 1세대부터 현재 전성기인 댄스가수까지 총 5명이 모여 옛 추억을 공유함은 물론, 함께 전국을 무대로 공연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무대를 준비하며 각자의 리즈시절 모습을 재연하는 부분에서 서로 격려해 주며 눈물을 흘릴 때는 나도 같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과거를 회고하며 전국을 돌며 친밀감을 쌓아가는 그들을 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무대 위의 빛나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멀어져 있는 시간 동안 천천히 삶을 느끼며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시간은 치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그 시절 추억들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프로그램 속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 아직도 살아있다"라며 추억들이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 나도 친구들과 공연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무대 화장을 하면서 나누던 이야기들, 서로 의상을 점검해 주기도 하고, 군무의 합을 맞춰보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조금 힘들었어도 친구들이 함께여서 행복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연습이 이어지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받는 박수와 환호는 나에게 큰 위안이자 그동안 연습하며 힘들었던 기억을 잊게 만들어줬고, 나아가 더욱 훌륭한 무용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나의 추억 한 페이지에는 공연을 하던 무대 그리고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무용단에 남아 공연을 하고 있는 친구,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친구, 무용이론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있는 친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 그리고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된 친구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추억이 전해 주는 그 커다란 힘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오늘을 버텨내고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늘 마음 속 한 곳에서 나 혼자 꺼내보던 이야기를, 우연히 보게 된 TV 프로그램 속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들을 토해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리운 감정도 드는 한편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진 않은 것 같아 뿌듯한 감정들도 밀려들었다. 그 시절 잘하든 못했든 그래도 무대 위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니 생기는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 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더욱 자랑스럽다.

다시 우리들이 모두 모이는 날 만나면 꼭 말해줘야지. 너는 그때도 빛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고.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똑같은 말을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보다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으로 인해 무대를 밟은 예술인이라는 자긍심과 부채감(負債感)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나는 이 세상을 부정하게 살지는 못할 듯하다. 이것이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이 가져다준 가장 큰 힘이자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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