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구시 극한 대립 '초유의 사태'…퀴어 축제 책임 공방으로 번져(종합)

17일 오전 7시부터 경찰·대구시 신경전
행사 차량 진입하자 몸싸움 일어나 현장 아수라장
도로 통제되자 곳곳에선 교통 체증도 극심

17일 오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위한 무대설치 차량이 진입하자 이를 제지하려는 대구시청·중구청 공무원들과 차량 진입을 진행시키려는 경찰간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

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두고 경찰과 대구시가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행사는 예정대로 치러졌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이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 행사 시작 전부터 아수라장

이날 경찰과 대구시의 신경전은 오전 7시부터 시작됐다. 행사를 막으려는 대구시와 도로 통제에 나서려는 경찰로 나뉘어 삼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대구시와 중구청 공무원 500명은 주최 측의 무대 설치를 막기 위해 대중교통전용지구 도로 양옆으로 1m 간격으로 섰다. 대구시는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집회라고 규정하며 저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경찰은 적법하게 신고된 합법 집회라며 주최 측 차량이 진입할 수 있도록 도로를 통제했다. 경찰은 20개 중대 1천300명, 교통 및 일반 직원 200명 등 모두 1천500명을 동원했다.

오전 9시 27분쯤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사 장비를 실은 차량이 반월당네거리에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진입을 시도하자 곳곳에 고성과 실랑이가 오갔다. 경찰과 행정 당국의 대치가 계속 이어지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양측의 대립은 옛 중앙파출소 부근에서 정점을 찍었다. 경찰은 방패를 이용해 대구시 공무원들을 도로 밖으로 밀어냈고 대구시 공무원들은 "불법 집회를 방조하는 대구경찰은 각성하라"고 외치며 저항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는 이 집회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며 "이미 우리의 충돌로 인해 반월당 일대가 혼잡하다. 다들 한 발자국씩만이라도 뒤로 물러서 주길 바란다"고 거듭 외쳤다.

◆ 홍준표 "대구경찰청장 책임 묻겠다"

양측이 충돌하자 홍준표 대구시장도 급하게 현장을 찾았다. 홍 시장은 오전 10시 26분쯤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대구 시민들이 정당하게 이용하는 시내버스는 막아서면서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는 트럭은 진입시키는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경찰과 대구시 공무원 간의 충돌을 일으킨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이번 퀴어축제를 대비해 수차례 경찰과 협조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법 도로점거는 대구시민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대구경찰청장은 오히려 나를 집회방해죄로 입건할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며 "나는 집회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이 없는 행사를 위해 도로를 무단 점용하는 걸 막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홍 시장은 약 10분간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대구시와 중구청 공무원들을 향해 "우리는 오늘 불법 도로점거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격려한 뒤 자리를 떠났다. 홍 시장이 자리를 뜨자 동원된 대구시와 중구청 공무원 500여명도 철수했다.

경찰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집회는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행정 당국의 도로 점용 허가와 무관하게 집회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축제를 강제로 해산해야 할 만큼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명백한 위협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고, 무리한 행정대집행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례도 근거로 삼았다.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도 경찰 책임론을 의식한 듯 "대구경찰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검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홍 시장이 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려는 것"이라고 홍 시장을 비판했다.

◆경찰, 대구시 갈등에 시민만 피해

대구시와 경찰의 갈등에 애꿎은 시민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있다. 행사 준비가 본격화되자 경찰은 중앙네거리~반월당네거리 구간을 통제하고 진입하는 시내버스들을 우회시키기 시작했다. 이 구간 안에 있는 버스정류장에는 오후 8시까지 버스가 진입할 수 없으니 인근에 다른 버스정류장을 이용해달라는 안내판이 붙여졌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 허모 (24) 씨는 "퀴어축제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공무원들이 충돌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매년 진행되는 행사로 알고 있는데 올해는 아침부터 유난히 시끄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 통제로 인해 중앙로역과 반월당역 일대에서도 극심한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국채보상로를 이용해 동대구역 쪽으로 향하던 하승홍(26) 씨는 "영문도 모른 채 중앙네거리 인근에서 15분 넘게 정차해 있었다"며 "행정기관의 충돌로 애꿎은 시민들만 더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이날 정오부터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축제를 반대하는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도 오후 2시부터 맞불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정대집행 현장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