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찾아간 영상 중 제일 먼저 눈길을 잡아챘던 건 첫인사 장면이었다. 싱 대사의 허리와 목은 굽혀지지 않은 반면, 이 대표는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며 허리와 머리도 함께 굽혔다. 곧게 서서 내려다보는 중국대사한테 이 대표가 조아리는 듯한 모습에 즉각적인 불쾌감이 느껴졌다. 야당 대표쯤 되면서 '외국인과 악수할 때는 상대방과 눈을 맞춰야 한다'는 기본도 익히지 못한 것인지, 중국에 대해서는 그저 자동으로 허리가 굽혀지는지, 곱지 않은 투덜거림이 속에서 올라왔다. 안 그래도 대사들이 주재국 야당 대표를 찾아가 만나는 통상적 관례를 깨고 직접 중국대사 관저를 찾아간 것부터 마땅찮았던 터라 더 언짢았다.
그런데 그날의 전체 회동을 보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방송으로 우리 귀에 꽂힌 싱 대사의 발언 내용은 귀를 의심케 했다. (자기네한테 베팅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재국 국민을 직접 협박하는 외교관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외교관은 파견국과 주재국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듣기 싫은 메시지도 부드럽게 표현하도록 고도로 훈련받는 직종이다. 아무리 전랑외교 흐름 속에서 중국 외교관들이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만, 상대편 외교관을 향해서도 아니고 전체 국민을 향해 고압적이고 모욕적인 말들을 내뱉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분노를 더 증폭시킨 것은 그 와중에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야당 정치인들의 태도였다. 15분이나 이어진 싱 대사의 말을 끊지도 않고 유감 표명도 없이 다소곳이 경청한 야당 대표, 열심히 받아 적는 야당 정치인들의 모습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전직 장관까지 포함된 그들 중 우리나라 국장급 공무원의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으며 경청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중국을 지렛대 삼아 당내 리더십 위기를 돌파한다는 실리적 계산 때문에 굴욕을 견딘 것인가, 아니면 굴욕도 굴욕이라 느끼지 않는 본질적 굴종 성향이 문제인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이런 대형 사고를 친 후 민주당의 태도를 보자면 그렇다. 반성과 성찰은커녕 중국이 시킨 일은 절대 번복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로 티베트로 떠난 민주당 의원들을 보라. 중국 정부의 티베트 탄압을 덮고 '사회주의 새 티베트'를 선전하기 위한 관제 박람회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란다. 인권을 떠드는 정치인들이라면 평상시에도 참석하기 낯뜨거운 행사다. 하물며 지금은 중국대사의 망언으로 국민 감정이 격앙돼 있어 어떤 정치적 이득도 이들이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굴종 유전자가 아니라면, 굳이 지금 거길 왜 갔으며, 민주당은 왜 이들을 제재하지 않았을까?
지난 1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계열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싱 대사의 발언을 옹호하면서 한국이 소국(小國)스러운 째째함을 벗어나야 한다며 지적질을 했다. 우리나라를 '소국'이라 지칭하는 그들의 오만함과 무지함을 '그들의 문제'로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자신을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소국스러움이 조금도 없는지 말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색깔론으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줘 왔고, 그것에 대한 자정작용을 거치며 개인과 정치세력의 내면적 성향을 추측해 재단하는 것을 피해 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세가 복잡할수록 우리 내면의 당당함과 유연함이 절실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안보를 의지하는 미국도 경제적 이익이 충돌되는 경우 안면을 바꾼다.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드 사태 이후 우리를 향한 행태를 보면, 언제라도 수 틀리면 교역 원칙을 던져 버리고 무뢰배로 돌변할 수 있는 국가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라 해도 우리는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증진하며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갈짓자 행보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독자적 가치와 관점에서 국제 정세를 판단하며 기민하게 대처하는 역량이 필수라는 것이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자세, '등을 곧게 펴지도, 상대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도 못하는 굴종 DNA'부터 갈아엎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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