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벌써 92세가 됐습니다만, 아직도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비극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가져갈 기억들이겠지요. 그 때 나와 같이 참전했던 전우들 중 저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팔공산 아래 있던 대구 서촌초등학교와 당시 6년제였던 대구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초보교사였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고 그 해 10월 자원 입대해 공병으로 보직을 받아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 뒤 1951년 5월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 있는 3군단 예하 1103 야전공병대에 배치됐습니다. 그 때 벌어진 전투가 '현리전투'로 당시 3군단은 중공군에게 크게 패해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공병대 부대 인원이 300명이 넘었었는데 전투가 끝나고 후퇴해 살아남은 전우는 고작 60여명에 불과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전우들이 전투에서 숨졌지만 그 중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전우가 한 명 있어 이 자리를 빌어 추억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이천광'이라는 전우입니다. 그는 함경도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인가 두 살인가 많았었지요.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어찌나 친했는지 잘 때도 서로 껴안고 잠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는 성격도 참 좋았고 무던했습니다. 게다가 고향이 함경도라 왠지 성격이 무뚝뚝할거라 생각했지만 참 명랑했던 사람입니다. 별명이 '장군'이었는데 아마 이름에서 장군의 느낌이 묻어나서 붙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늘 천(天)에 빛 광(光)을 썼으니 다들 "이름 참 좋다"고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등병 때부터 우리끼리 '이 장군'이라고 별명을 불렀지요. 아마 그도 내심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가 당시 소위로 임관, 장교가 되면서 전방으로 갔습니다. 그 때 부대의 전우들은 모두 "축하한다"며 그가 떠나는 길을 환송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절대로 '사는 길'은 아니었다는 걸 그 때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당시 갓 임관한 초급 장교들이 전방에 나가서 이른바 '총알받이' 소리를 듣으며 많이 희생됐었다는 걸 안 건 나중의 일이니까요.
시간은 흘러 1953년 7월 27일 휴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저는 산 꼭대기에 올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산야를 내려다보며 총성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휴전하기로 한 오전 10시가 됐고 총성이 거짓말처럼 멈추자 "이제 휴전됐다!"라는 함성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니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함께 전투하다가 숨진 수 많은 전우들이 생각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때 전우들이 생각나면 당시 모아놓은 사진들을 봅니다. 부대 안에서 카메라를 다룰 수 있는 부서에 있었던 덕분에 당시 전우들과 사진도 자주 찍었고 그걸 잘 모아놓았습니다. 요즘은 무공수훈자회 대구 수성구지회 사람들과 함께 전쟁 당시 힘들었던 이야기와 그 때의 소소한 추억들을 나누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넘은 지금, 몇몇 전우들의 모습이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천광' 이 이름은 계속 그리워하며 기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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