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억압의 공간을 자유의 공간으로

국립근대미술관을 통해 화원을 화려한 문화도시로, '달성군 효과' 기대

정욱진 뉴스국 대구권 본부장.
정욱진 뉴스국 대구권 본부장.

스페인 빌바오시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미술관, 전시 미술품보다 미술관이 더 유명한 미술관, '빌바오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와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연회원이 많은 미술관 등이다.

그중에서도 쇠퇴해 가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공업도시 빌바오시를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만든 미술관이라는 수식어가 우리에겐 더 친숙하다.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널리 알려져서다.

북대서양을 향해 흐르는 네르비온강 수변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기 전까지(1997년 기준) 빌바오시는 스페인에서 경제 및 인구 규모를 고려했을 때 20위권에 위치한, 유럽에서조차 존재감 없던 중소 도시였다. 20세기 초 철강, 화학공업, 조선산업 및 무역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부강하던 빌바오시는 1970년대 중공업 경제 위기로 실업률이 35%까지 증가하면서 인구가 45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급감했다. 경제적인 낙후는 물론 각종 폐부지들의 방치로 암담한 도시환경에 골머리를 앓았다.

쇠락한 도시의 부활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빌바오시는 1997년 '구겨진 종이 더미' 형태의 독특한 미술관을 선보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도시재생의 성공을 의미하는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등 빛바랜 산업도시에서 화려한 문화도시로 새로운 자리매김을 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매일신문DB.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매일신문DB.

미술관 개관 첫해인 1997년 130만 명이 다녀갔고, 3년 만에 350만 명이 찾으면서 초기 투자 금액의 7배가 넘는 수입과 4천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같은 지역 경제 상승효과도 봤다.

프랑스 파리의 상징적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 오르세 미술관도 오랫동안 쓰지 않던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바꾼 사례다. 대형 시계 등 기차역의 요소들을 그대로 살려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로 활용했다. 이 기차역의 시계는 관광객들이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하면 사진을 남기는 인기 스팟이 됐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런던 템스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만든 미술관이다. 노후화된 건물과 폭등한 기름값의 영향으로 1981년 폐업한 화력발전소는 20년간 흉물스럽게 방치되면서 주변 지역을 슬럼화시켰다. 런던시는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국립미술관의 전시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주목했다. 거친 벽돌과 굴뚝을 그대로 보존한 테이트 모던은 그와 어울리는 실험성 가득한 전위적 작품을 전시해 독창적인 문화공간을 창출했다. 이를 통해 한 해 5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면서 런던의 명물로 떠올랐다.

최근 국립근대미술관·국립창작뮤지컬 콤플렉스 등이 들어설 대구문화예술허브 입지로 달성군 화원읍이 선택되면서 지역사회가 고무돼 있다.

특히 국립근대미술관이 들어설 곳은 올 연말 이전하는 대구교도소 후적지이다. 도시재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구겐하임 미술관 등과 닮은꼴이다.

그래서 달성군은 '억압의 공간을 자유의 공간으로'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사람의 발길을 억제했던 교도소 부지를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2000년대 화원뉴타운(천내·명곡·본리지구)이 조성되면서 달성군의 중심지로 위세를 떨치다 이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화원읍을 문화 중심 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빌바오 효과'를 탄생시킨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국립근대미술관이 '달성군 효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국립근대미술관·국립창작뮤지컬 콤플렉스 조감도. 달성군 제공.
국립근대미술관·국립창작뮤지컬 콤플렉스 조감도. 달성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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