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공정하면서 단순한 입시, 불가능한가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정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는 '공정 수능'을 교육 당국에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킬러 문항 제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킬러 문항은 최상위권 수험생을 변별하기 위해 출제된다.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고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내용에 맞춰 출제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다는 비판이 많았다. 수능의 취지와 맞지 않고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교육 시장에선 '킬러 문항 하나가 1조 원짜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일부 학원들은 문제 풀이 노하우를 강점으로 내세우며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교육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수능 개선을 거론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시의적절하고 환영할 만하다. 한국 사회의 사교육 의존은 심각하다. 지난해 초·중·고생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은 고등학교 1학년생은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70만 원을 넘었다. 실제 사교육비 지출은 정부 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사교육비 증가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학력 격차 확대로 불공정이 심화되고 출산 기피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한 뒤 자식을 낳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인 '공정 수능'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촉구한 것이다.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과 학부모 입장에서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학생과 학부모, 교육 현장의 불안부터 잠재운 뒤 여론을 잘 수렴해야 한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개혁 방안을 논의해 종합 대책을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 수능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이 커지면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교육 개혁은 노동·연금 개혁과 함께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3대 개혁 과제다. 이 중 교육 개혁은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힌다. 역대 정부들도 공교육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고 수시로 제도를 바꿨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정부는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고 체감할 수 있는 입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와 수험생은 공정한 수능과 함께 '단순한 입시'도 갈망한다. 현재 대입 전형은 너무 복잡하다. 학부모와 수험생이 진학 상담을 받기 위해 값비싼 사교육을 받기도 한다. 수능은 1994년 처음 도입됐다. 수능의 한계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도입됐지만 '조국 사태'로 불공정 논란이 커졌다. 수능 위주의 정시는 공정하고, 학종으로 대표되는 수시는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뿌리내렸다. 하지만 학력이 아니라 학벌을 중시하는 경쟁적 입시제도에서는 수시든, 정시든 폐단을 막을 방법이 없다. 장기적으로 수험생들이 학벌이 아니라 학문 탐구를 위해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대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 제외를 계기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고, 사교육비가 절감되고,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을 둔 학부모로서 공정하면서 단순한 대학 입시 제도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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