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접시꽃이 피고 담장에 능소화가 늘어지는 6월이다. 6월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갈등이 만발한다. 학년 초의 어수선함과 설렘, 긴장이 지나가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틈을 타고 숨기고 있던 저마다의 기질이 있는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게 여기저기서 퍽퍽 갈등으로 피어난다.
◆교실 에어컨을 둘러싼 갈등… 설득하는 교사와 반발하는 학생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며 환기가 중요해져 더운 날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창문을 일부 열어두고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 사용에 대한 규제가 줄어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담임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저희끼리 생활하게 된 우리 반 아이들은 에어컨을 맘껏 켠다. 그러다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 몸이 안 좋아 병원 들렀다 등교하겠다는 학생의 문자를 받고 조회하러 교실에 갔더니 아침부터 18℃로 설정해 놓고 있다. 몸이 안 좋아 추운 학생이 있으면 에어컨 설정 온도를 올리라고 했다. 득달같이 반발한다.
"열사병 걸려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에어컨을 끄는 것도 아니고 온도 좀 올린다고 해서 열사병 걸리지 않으며, 몸이 안 좋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런 정도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냐고 해도 "자기가 잠바를 입으면 되잖아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정도라는 건 적나라한 이기심을 이미 숱하게 표출한 적이 있다는 의미이다.
처음엔 설명을 했다. 설명하고 납득시켜 설득하려고. 학교란 곳은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라 가정보다 규칙이 더 많고 합의가 되면 규칙도 바꿀 수 있으며 함께 즐겁기 위해서는 규칙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리고 더 나은 공동체는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곳이란 걸 수시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꾸준히 설명했다.
여기서 대부분 학생은 6월 정도가 되면 중학교라는 야생의 환경에서도 규칙이 있고, 그 규칙 속에서 배려받는다는 걸 알고 편안하게 안착한다.
하지만 여전히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 학생도 존재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단호함이다. 질문의 의도가 궁금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너지 많이 들어도 '단호함'은 필요… 학생을 사랑하니까
단호함은 쉽지 않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게다가 함께한 시간이 쌓이고 정이 들면 단호해지기 더 어렵다. 그 전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 신경전을 이어가며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거리 조절에 성공해야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인 연인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신경전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지 않나. 침묵과 무표정도 신경전의 한 방법이다. 회피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 단호함의 밑바탕에는 교육적 애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수용과 지지'는 참 좋은 말이지만, 상담실이나 병원이 아닌 가정교육이나 학교 교육처럼 꾸준히 계속 이어져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조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쓸데없는 갈등으로 감정 소모가 많아지면서 관계도 나빠지고 생각이나 행동도 잘 개선되지 않는다.
최근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전문가의 견해를 발견했다. 30년 이상 소아·청소년을 만나온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설명하지 말고 지시하라고 한다. 한두 번 설명해도 안 되면 분명하게 지시해야 하는데, 부모들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설득한다. 윽박지르지 않고 대등한 관계에서 갈등을 풀어가기 위해 합리적인 말로 설득하려 하지만 그때부터 설득당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이 아이에게 달린 일이 돼 버려 부모는 주도권을 뺏기고 애원하게 된다고.
이미 거기 익숙해진 아이들은 학교 같은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사회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 그게 안 되면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저항하며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그러고는 중간 전달자로서 교사와 학부모 간 오해와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단호하게 지도하는 것이 자칫 주눅 들게 만들거나 눈치 보는 아이로 만들까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주눅과 눈치는 다르다. 주눅 들어버리면 잘하던 것도 움츠러들어 못하게 되지만 눈치는 국어사전에도 '남의 마음이나 일의 낌새를 알아채는 힘'이라고 풀이돼 있다. 국어 교사로서 나는 눈치를 자주 언급하는데 앞뒤 문장의 맥락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의도를 눈치껏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부 잘하는 비결이고 인간관계 잘 맺는 비법이다. 눈치는 볼 줄 알되 주눅 들지 않게 하려면 말이나 행동이 개선됐을 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칭찬해 주어 뿌듯하게 해주면 된다.
나도 친구 같은 선생님,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했지만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등 뒤에서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도 때로 모른 척하며 교사이거나 엄마로서 일관성을 가지고 대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날 선 언어가 아니라 진솔한 말로 인간적인 교류가 됐다.
이제 기말고사 치고 나면 여름방학이다. 종업식 하는 날까지 티격태격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겠지만 6월 들판에 줄지어 자라는 벼들처럼 아이들도 땀을 뻘뻘 흘리며 매일 매일 자라고 있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배꽃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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