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봄과 초여름에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에 푹 빠져 있었다.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만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는 없었지만 주인공들이 달고도 쓴 인생에 각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좋다가, 안타깝다가, 슬펐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꼽으라면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을 다룬 '정준과 영옥, 그리고 영희'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정준과 영옥은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의 이른 죽음으로 다운증후군 영희를 죽을 때까지 보살펴야하는 영옥은 본인과 결혼을 생각하는 정준의 모습에 이별을 통보한다. 영옥을 놓칠 수 없는 정준. 그는 노력으로 영희와 공존하는 삶을 이어간다.
다음은 극 중 영옥이 속상해 정준에게 울며 내뱉는 말이다. 영옥의 마음이 상한 건, 그날 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꼬마가 영희를 계속 보며 놀린 탓. 하지만 꼬마의 부모는 사과는 커녕 오히려 영옥 일행과 싸운다.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앨 길거리에서 흔하게 못보는 줄 알아? 나처럼 다른 장애인 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들을 대부분 시설에 보냈으니까. 한땐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 같이 살 집을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영희 어쩌면 일반 학교에서 계속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었어. 근데 일반학교에선 쟬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 덴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시설에 보내면 보낸 날 모질다고 욕하고 안보내면 오늘 같은 일을 밥 먹듯이 당해야 돼. 대체 날더러 어쩌라고?'
지난 3년 간 사회부에서 복지를 담당해온 기자는 장애인 주제를 꽤 다뤘다. 하지만 저 대사를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동안 장애의 삶을 어설프게 아는 척만 해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안내견을 취재했다. 안내견 식당 출입 거부 현실을 파악하고자 동행 취재를 했는데, 시각장애인과 안내견과 함께 들어간 식당에서 기자 일행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에 숨이 턱 막혔다. 기자로 용감하게 나서야 했는데 자꾸 주눅들었다. 영희와 영옥의 삶이 자연스레 '오버랩' 됐다. 장애인으로 온갖 눈길과 편견을 받아가며 감내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그때야 조금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무게를 알면 끝일까. '아 이렇겠구나'하는 공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그 태도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 우리는 장애를 다름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여성학자로, 방송인으로 전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오한숙희 작가가 자펙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딸과의 30년 동행기 '우리, 희나'로 돌아왔다. 작가는 10년 전 돌연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제주로 터전을 옮겼다. 네살 때 1급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딸 희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페 스펙트럼을 가진 딸을 돌보는 육아의 길은 험난 그 자체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상처 받고 엄마인 자신의 삶마저도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교육과 치료라는 이름으로 했던 육아가 아이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엄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책은 지난 세월 동안 저자가 겪은 무수한 시행착오의 순간을 담고 있다. 암울하기만 하냐고? 아니다. 모녀가 외롭지 않게 세상의 일부로 살 수 있었던 건 이들을 다정하게 끌어안아준 주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를 다름으로 받아들이자 아이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달라졌다. 제지하고 개입하기보다 바라보고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장애를 다룬 이야기가 꼭 슬프지만은 않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부모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겠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작가는 마침내 모든 아이가 자신의 기질과 적성에 따라 살 권리가 있듯이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자신만의 재능을 가진 인격체로 살아갈 주체임을 상기시킨다.
다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를 처음 본 정준이 놀래자 영옥은 그를 나무랜다. 그러자 정준은 몰라서 그랬다고 말한다.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이 책을 통해서나마 장애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걸 넘어 다름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본다. 256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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