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괴담의 유혹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오염수) 방류 설비 시운전이 시작되자 우리나라에서 소금 사재기 파동이 벌어졌다. 대중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과민 반응한다. 곰곰이 따져 보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위험 회피 수단으로서 소금 사재기는 과연 합리적 행동인가?

정답은 과학으로 도출해야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삼중수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방사성 핵종들은 도쿄전력의 다핵종 제거 설비(ALPS)를 거치며 걸러진다. 문제는 삼중수소인데 이는 물의 형태로 자연에 존재한다. 물과 분리되지 않는 물질이다. 천일염을 만드는 과정에서 삼중수소는 물과 함께 증발한다. 과학적으로 천일염에는 삼중수소가 남아 있을 수 없다.

해산물은 어떤가? 지난 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이 발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출된 삼중수소는 해류를 따라 태평양 오른쪽 방향으로 흐른 뒤 4∼5년 후부터 우리나라 해역에 들어온다. 10년 후쯤이면 그 농도가 0.001㏃/㎥ 안팎이라는데 이는 우리 해역의 평균 삼중수소 농도 172㏃/㎥의 17만분의 1 수준이다. 지금의 장비와 기술로는 검출되기조차 힘든 농도라고 한다.

실제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고농도 오염수가 대책 없이 바다로 흘러들었다. 12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해역의 방사능 농도는 증가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더라도 우리나라 김, 다시마, 생선 등 수산물에는 유의미한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 접근이다.

이처럼 과학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불안 심리가 과도하다는 점을 알려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오염수 방류 괴담이 번지고 있다. 그 모양새가 광우병 괴담을 떠올리게 한다.

괴담에 솔깃한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닥쳐 오는 상황을 위험 요소로 과하게 여긴 조상들이 많이 살아남아 유전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6배 빨리 전파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1945년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 등은 괴담과 관련한 공식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유언비어의 양은 '주제의 중요성X증거의 모호성'이다. 괴담은 '증거의 모호성'을 기반으로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괴담이 퍼져 국민이 크게 불안해할 때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증거의 모호성'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괴담으로부터 국민들을 지켜주기는커녕 부추기고 선동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괴담 마케팅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받는다. 이재명 대표는 '핵 폐수'라는 말까지 썼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공격 재료로 활용해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속셈이 아니고서야 그런 용어를 쓸 수 없다.

괴담은 근거가 없지만 피해는 현실이 된다. 앞으로 도쿄전력이 오염 처리수 방류를 본격 시작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수산업계가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피해는 국민들이 골고루 받는다. 따라서 정부가 주력해야 할 일은 증거의 모호성을 걷어 내는 것이다. 과학의 언어로 국민을 설득해야지 "오염 처리수를 마실 수 있다"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일본 입장을 대변하려는 듯한 언행 역시 불필요한 불신을 키운다.

민주당도 괴담으로 재미 보겠다는 유혹일랑 버리기 바란다. 괴담인 줄 알면서도 그런다면 질이 아주 나쁘다. 혹여 모르고 그러는 것이라면 스스로 바보임을 인증하는 꼴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