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병원 출생통보제 도입해 ‘유령 아동’ 비극 막아라

부모에게만 맡겨져 있던 허술한 출생신고 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경기 수원에서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비롯해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가 살해·유기된 사실이 잇따르면서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감사원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2천236명을 파악하고, 이 중 1%(23명)에 대한 표본조사를 실시해 최소 3명의 사망을 확인했다. 1명은 유기 사례가 의심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영·유아 살해·유기 사실이 몇 년 동안 숨겨질 수 있었던 것은 현행 출생신고제의 허점 때문이다.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 한정한다. 부모가 신고하지 않으면, 국가는 아이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고, 보호를 받기 힘들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부각되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병원이 아동 출생 정보를 직접 등록하는 것이다.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신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제도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과 보호출산제 특별 법안은 각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전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찬반 논란 등으로 무산됐다.

출생통보제는 모든 아동의 누락 없는 출생신고가 가능하지만, 병원의 행정 및 책임 부담이 따른다. 또 출산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병원 밖 출산이나 낙태를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출생통보제를 미뤄서는 안 된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의료기관에 출생을 통보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출생통보제에 따른 병원의 부담을 덜어 주고,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 의료계는 '존엄한 생명'을 지키는 일에 협조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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