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싸우다가 모종의 합의 단계로 들어갔다. 미국이 G7 정상회담을 계기로 실익이 없는 '탈(脫)중국'(Decoupling)보다는 첨단산업만 규제하고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전통산업은 규제를 풀어주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그간 미국의 중요 우방과 동맹으로서 의리를 지켜 탈중국 정책을 성실히 수행한 한국은 미국의 행태가 당황스럽다. 한국은 대중국 수출이 감소로 돌아서고 무역흑자가 적자로 반전하면서 중국은 끝났다는 시각이 넘쳐 나지만 중국은 주한 중국대사의 입을 통해 한국의 무역적자 수출 감소는 한국의 탈중국 전략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기술 봉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미국, 일본, 대만, 한국 동맹 중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2023년 2월 외교부 아주국 국장이 포스코 차이나 대표와 미팅을 했고 4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광둥성 시찰 중에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중국이 핵심 이익이라고 한 대만 문제에 대해 미국 방문을 앞둔 한국 정상의 대만 발언이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새 정부는 중국에 대한 실리 외교보다는 미국의 가치 외교에 무게중심을 크게 두면서 대중 정책에 있어 지난 정부와 큰 차이를 보였지만 아직 중국의 대한국 정책에서 큰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인다.
야당 대표와 주한 중국대사와의 만남에서 중국대사의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마라"는 발언을 계기로 한중 관계는 새로운 경색 국면에 들어갔다. 중국은 이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한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이 대폭 낮아진 지금 만약 추가적인 한중 관계의 악화가 나타난다면 중국은 그간의 한국에 대한 수입 통제가 아니라 핵심 광물의 수출 통제를 보복의 수단으로 쓸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수출산업에 필요한 핵심 광물과 소재를 중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중국발 '제2 요소수' 사태를 조심해야 한다.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품목은 방법이 없다. 어떤 나라도 모든 공급망을 다 가진 나라는 없다. 공급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중국과 많은 분야에서 자원, 돈, 기술, 상품, 사람이 같이 얽혀져 있었다.
탈중국이란 말은 좋지만 자원, 돈, 기술, 상품, 사람에서 모두 결별하려면 엄청난 고통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를 단계적으로 정교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로 탈중국하면 고통은 배가 되고 실익은 잃어버리는 수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이 말한 디리스킹(De-risking)은 정작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필요한 전략이다.
새 정부 들어 '안미경중'(安美经中)의 수명이 끝났다는 얘기가 난무한다.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이미 2023년 4월 들어 19.1%로 대미 의존도 18.5%와 0.6%포인트 차이밖에 없다.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대만의 25.2%, 호주 24.8%, 일본 19.3% 수준보다 낮고 현재와 같은 대중 무역 추세라면 3~4년 뒤면 자연히 경중(经中)은 사라질 판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의 하락이 중국에 시장이 없어진 게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데 있다. 이런 추세라면 미래 30년을 내다보면 중국이 한국에 재앙이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제조업에서 중국은 한국의 경쟁자로, 금융에서는 침략자로, 4차 산업혁명에서는 흡입자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정책의 기억력이 자본주의는 4~5년이지만 사회주의는 최하 10~15년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전쟁에서는 지속적 투자와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한데 4~5년 표심에 목숨 거는 자본주의 국가와 달리 사회주의 국가는 기술 개발이든 경제정책이든 자본주의보다 멀리 보고 길게 간다.
한국은 시장은 중국에 둔 반도체와, 소재는 중국에 의존하는 전기차 배터리 때문에 소금 장수와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와 같은 상황이다. 현재와 같은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출 구조에서는 이젠 대중 무역수지는 흑자가 아니라 균형 수준이 최선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배터리 수출 호조로 인한 배터리 소재 수입 증가가 대중 무역흑자를 감소시키는 주범이다.
대중 수출 비중이 2002년 이후 최저로 떨어진 지금 한국은 대중 수출 비중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오히려 중요하다. 더 이상 탈중국이 아니라 대중 무역적자 폭의 축소나 흑자 전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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