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미국 애플사가 개발한 아이폰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7년은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통하는 세상이 됐다. 최근 등장한 인공지능(AI)은 스마트폰을 넘어 1879년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과 맞먹는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에 관한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일신문 인공지능 TF는 AI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가상의 도시를 통해 10년 후 AI와 공존하는 신인류의 모습을 그렸다. ▷교통·인프라 ▷의료·법률·교육 서비스 ▷사회·문화·스포츠 등 크게 3가지 분야별로 명과 암을 구분했다. 기사에 들어갈 그래픽이나 이미지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다가올 미래가 반드시 장밋빛이라는 보장은 없다. AI가 생성하는 가짜뉴스로 범죄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대량 실업 사태가 빚어질지도 모른다.
자동차 산업이 막 태동하던 1910~1920년대 미국의 말과 노새 수는 1910년 2천400만 마리에서 1920년 2천600만 마리로 최고치에 이르렀다('바퀴의 이동' 중). 새로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낡은 것을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은 그 자리를 자동차에 내줬다. 변화는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다.
◆소희 씨가 차를 판 이유는?
국제공항에서 근무하는 한소희(37) 씨는 최근 차를 팔았다. 차를 판 대신 출근길에 항상 스마트폰으로 최적의 경로를 살핀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내비게이션이 전동 킥보드, 공유형 자전거, 버스, 지하철 등 이동 수단을 제시하고 경로도 알려준다. AI 검색 엔진이 도가 지나치게 똑똑해져 자가용을 고집하는 것이 미련한 일이 됐다.
AI 검색 엔진은 각종 모빌리티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경로를 안내했다. 통행 차량 수, 속도, 보행자 흐름까지 고려해 최적의 경로를 열려주는 AI다. '손안의 미니 관제탑'이랄까. 기차표, 항공권 예매와 결제도 말만 하면 알아서 해준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일본 삿포로행 비행기표 예매를 부탁한 그녀다.
어제 출근길에 처음 이용한 전동킥보드가 마음에 들었던 그녀는 오늘은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이다. 아, 어제 킥보드 이용했으니 오늘은 자전거를 이용할까. 선택지가 많으니 그녀의 고민도 몇 배는 더 깊어진다.
소희 씨는 오전 8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소희 씨의 집에서 회사인 국제공항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교통 체증 같은 변수 때문에 지각할 걱정은 하지 않는다. 도로 위 신호등도 AI의 통제 아래에 있어 출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니까.
AI가 조정하는 스마트 신호등은 시내버스가 특정 구간에 정체하면 신호를 자유롭게 조율한다. 시내버스도 마치 기차와 같이 도착, 출발 시간이 비교적 정확해졌다. 각 정류장마다 예상되는 승객수도 알 수 있다. 정류장에서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자가용처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도입한 스마트 신호등 사업 덕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지난주 구독 신청한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이용해야겠다고 소희 씨는 결심했다. 조금 비싸지만 편하게 가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자율주행차 구독 서비스 '없다(UPDA)'는 10년 전 모바일 택시 호출 서비스와 비슷하지만 차를 모는 기사는 없다는 차이가 있다.
괜히 말 붙이는 사람도 없어서 맘 편히 택시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소희 씨에게는 단비 같은 서비스다. '없다(UPDA)' 출시는 소희 씨가 자동차 소유를 포기한 결정적 계기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차를 사지 않고 공유 서비스를 이용한다.
소희 씨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들도 자신들의 차를 처분한 지 1년이 넘었다. 특히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자율주행차가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항을 새로 지으면서 만든 고속도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자율주행차 시험구간이었고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이곳에서 자사의 자율주행차를 테스트했다.
소희 씨의 직장인 공항도 최근에 주차장을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차를 포기하니 수천 대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주차장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어느 순간부터 차량 이용 수가 줄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 공간 낭비라는 여론 일자 주차장을 새롭게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에서 그녀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다. 도심항공교통(UAM)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소희 씨의 귀가 쫑긋했다. 어쩐지 집 근처에 작은 비행정류장을 만드는 공사가 수개월째 이어지더라, 그녀는 지난주 공사장을 지나던 때를 떠올렸다. 강수나 바람의 영향까지도 정확하게 예측한 AI 덕분에 하늘을 나는 에어 버스도 나온다는 라디오 앵커의 나긋한 목소리에 그녀는 잠시 눈을 붙였다.
◆대량 실업과 해킹이 일상으로…사고는 누구 책임?
잠시 후 차에서 내린 소희 씨는 시계를 본다. 오늘은 예정보다 5분 일찍 도착했다. 자가용을 이용할 때보다 훨씬 쾌적하고 빨라졌다. 커피 한잔을 할 시간을 확보해서인지 하루의 시작부터 소희 씨는 기분이 좋다. 그녀는 내일도 자율주행차 구독서비스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중교통 기사들의 영업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집회·시위가 있나 보다. 조금 시끄럽다고 생각한 소희 씨가 인상을 구긴다. 운송업 노동조합 시위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예고돼 있으니 유의하라는 팀장의 말이 멀리서 들려온다.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본 게 언제더라? 가늠해보니 너무 아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희 씨는 그저 적잖이 놀라기만 할 뿐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친한 직장 후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없다(UPDA) 이용하다가 보행자와 사고가 났어요. 늦을 거 같은데 팀장이 전화를 안 받네요. 대신 전해줄 수 있어요?' 동료의 문자를 받은 소희 씨는 어젯밤 인공지능이 가져올 처참한 미래를 그린 영화를 보며 떠올린 질문을 다시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없다(UPDA) 사고 소식은 이틀 사이 소희 씨 주변에서만 벌써 세 번째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소희 씨의 마음 한 켠에 막연한 두려움도 생긴다.
사이버 범죄에도 취약하다. 지난달 대규모 해킹으로 도심이 큰 혼란을 빚었다. 자신만의 원칙으로 설계된 자동차들은 교통경찰의 말도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해커는 여전히 추적 중이다. 그럼에도 달콤한 문명의 이기를 맛본 소희 씨가 자율주행차를 단번에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내년이면 UAM 상용화가 이뤄진다는 발표에 기대를 품은 그녀다.
늦어서 죄송하다며 동료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30분밖에 늦지 않았다. 보행자는? 구급차에 실려 갔죠. 뭐, 안타깝지만 제 책임은 크게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에요. 팀장과 동료의 대화가 들린다. 그녀는 이 사고 유형상 탑승자에게 물을 책임은 없기 때문에 사고 현장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직접 운전할 때 보행자를 치면 운전자 과실을 크게 보던 10년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자율주행차는 탑승자의 안전을 우선한다. 그게 자율주행차 세계의 원칙이니까. 변칙을 용납하지 않는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곳에는 온전히 확률만 남는다. 보행자가 어린아이라면? 내 가족이라면? 이런 경우의 수는 고려되지 않는다. 소희 씨는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이름 모를 보행자에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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