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당신 66번째 생일이었잖아."
"모처럼 찰밥에 미역국도 끓였는데, 괜찮았어?"
쫀득쫀득하고 맛있는 찰밥이라면 반찬 없이도 잘 먹던 그 모습 눈에 선한데….
남편이 먼 길 여행을 떠난 지, 어느새 두 계절이 바뀌었다. 아프긴 했어도, 그렇게 쉽게 눈을 감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토요일 새벽. 항암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려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만에 호흡과 맥박과 심장이 스르르 멈춰버렸다.
지워질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는 넘기기 쉬운 떡국을 먹었다. 점심은 좋아하는 소보루빵으로 하고, 저녁에는 약을 복용하기 위해 미숫가루와 두유를 마셨다. 하루 종일 배뇨를 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남편이 새벽이 가까워오면서 조금씩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아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응급실 도착과 함께 링거와 소변 줄이 달렸다. 몇 가지 검사가 동시에 진행되는가 싶더니, 심폐소생술이 시도되면서 의사는 연명의료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다. 그것도 잠시,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사위가 조용해지고 말았다.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의사의 담담한 선고에, 인사도 없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눈 좀 떠보라'고 흔들어보았지만 묵묵부답.
장례절차에 대한 아무런 정보와 준비도 없던 나에게 '황망'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아들과 나는 이름 대신 '상주'와 '미망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지고, 편안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형제자매와 흩어진 친인척 등 수많은 문상객이 다녀갔다. 그렇게 홀연히 떠나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끈끈한 화합과 소통의 기회를 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실은 넉 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남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시원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증명사진이 담긴 각종 자격증과 지갑, 인터넷 상거래 책들과 마지막으로 관심 기울였던 웹소설 관련 자료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은 정리하는 순간 그의 기억까지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정리를 더디게 한다.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토론 프로를 시청할 때 또는 거실 청소를 할 때도 시시때때 남편이 거기 그렇게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내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도 저 자리에서 붉으락푸르락 언성 높여가며 훈수를 두거나 비판하거나 손뼉을 치고 있을지….
주변에서는 '남편에게 죽을 복(福)이 있었다'는 위로의 말을 한다. 오랜 시간 사경을 헤매거나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빈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오래도록 가족들과 편안하고 따뜻한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 더 큰 복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그렇게 서둘러 떠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 해주었을 것을. 길을 걷다가 구급차 소리를 들으면, 무심코 뒤를 돌아보게 된다. 혹시 우리집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지난 몇 년 사이 그런 걱정이 몸에 밴 모양이다.
살아생전 입에 익지 않아 한 번도 '여보'라고 다정하게 부르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한 번 불러보아야겠다.
"여보, 더 이상 질병이 없는 곳으로 무사히 안착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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