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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07> 얼음이 홀연히 절로 깨지더니 잉어 두 마리가 솟아 나왔다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왕상부빙(王祥剖氷)', 종이에 목판인쇄, 38.1×20.8㎝, 영국국립도서관 소장

'왕상부빙'은 언해본 '삼강행실도'의 한 페이지다. 한글 번역을 그림 바로 위에 두어 설득의 두 수단인 문자와 이미지를 상문하도(上文下圖)로 나란히 편집했다.

국가에서 국민 교화를 목적으로 윤리서를 편찬해 배포한다는 발상은 세종 때 처음 나왔다. 집현전 학자들과 도화서 화원들의 긴밀한 협업으로 탄생한 '삼강행실도'는 성종 때 원본의 내용을 3분의 1로 줄이고 한글 번역을 첨부한 언해본 '삼강행실도'로 재출판 된다. 이 언해본이 기준이 되어 행실도류가 중종, 명종, 선조, 영조, 정조 등을 거치며 거듭 간행되었다.

주인공의 이름과 행실을 각각 두 글자로 압축한 사자성어 제목이 있는 그림이 먼저 나오고 행실을 설명한 한문 원문과 시(詩), 찬(贊) 등이 뒤따른다. 시와 찬은 주인공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칭송이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그림으로 풀고, 그림을 먼저 배치하는 것이 행실도류 출판물의 특징이다. 보는 순간 내용이 한눈에 각인되는 시각 이미지의 호소력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왕상부빙'은 3단 구성에 5장면으로 5가지 이야기를 재현한다. 왕상이 얼음을 깨고 잉어를 얻었다는 대표적 사건이 하단에 있고, 중단과 상단에 각각 두 가지 이야기를 그렸다.

왕상은 친모를 일찍 여의었다. 중단 왼쪽은 자애롭지 못한 계모 주씨의 모함으로 아버지가 왕상에게 쇠똥을 치우게 하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계모 어머니가 참새구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참새들이 무리지어 날아오는 장면이다.

상단 왼쪽은 주씨가 능금나무를 잘 지키라고 하니 비바람이 치면 능금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왕상이 나무를 안고 우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계모가 돌아가시자 관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이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왕상의 행실이 그려질 때마다 옆에 '왕상'이라고 써 놓았다. 사건의 나열과 이름표가 촌스러워 보이지만 반복의 각인 효과가 있다. 왕상의 모습과 이름을 짚어가며 그의 행실을 하나하나 인지함으로써 왕상이라는 효자의 존재와 그의 효행을 통해 '효'라는 추상적 이념이 어떤 실체인 양 구체적으로 습득되기 때문이다.

왕상은 3세기 중국 진(晉)나라 때 인물이다. 왕상의 효행이 구구절절한 것은 진나라 역사서에 모두 그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효성이 지극해 얼음 속에서 잉어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빙홀자해(氷忽自解) 쌍리약출(雙鯉躍出)", 곧 얼음이 홀연히 절로 깨지더니 잉어 두 마리가 솟아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상이 서진의 관료가 되어 '진서'에 전기가 실리며 그의 행실이 전해졌고 '자치통감', '세설신어', '소학', '이십사효' 등에 재수록 되었다. 왕상의 이야기는 그가 고위 관료로 출세해 더욱 설득력이 컸을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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