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공지능(AI) 인류의 탄생]<중> 법률‧교육‧의료 AI와 생활하는 '연진 씨'의 하루

챗봇으로 소송 제출 서류도 ‘뚝딱’, AI 판사 공정성 여부는 과제
“정답만 내놓는 AI, 학생들은 ‘생각하는 힘’을 잃었다” 2034년 교사의 시각
‘닥터 왓슨’으로 언제 어디서나 진료부터 처방까지 단번에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포킷(Pokeit)에서 제작한 상업용 이미지.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포킷(Pokeit)에서 제작한 상업용 이미지. '한 30대 여성이 법원에서 AI 로봇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라는 명령어로 넣자 단 30초만에 이미지가 생성 됐다. 포킷(Pokeit)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는 AI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2023년 오늘날 미국 오픈AI(OpenAI)가 개발한 생성형 AI '챗GPT'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AI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AI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흐름이다. 이제는 수십년 내에 인류가 AI와 더불어 공존할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최근 인류와 AI가 공존하는 시대가 앞당겨진다는 의견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스스로 정보를 학습하는 AI 특성상 발전 속도가 무한대로 증가해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간이 AI와 어떤 모습으로 뻗어나가게 될지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매일신문 인공지능 TF는 10년 후에 AI가 인류의 모습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편에서는 ▷법률 ▷교육 ▷의료 영역에서 AI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화를 가상으로 표현했다. 물론 희망적인 미래만 꿈꿀 수는 없다. 낙담하는 삶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AI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일상의 편리함과 의구심을 담는 데 주력했다.

◆ 변호사도 필요없다…로(law)챗봇 하나면 소송 준비도 끝

2034년 7월 7일은 '돌싱녀' 임연진(38) 씨에게 일생일대 중요한 날이다. 딸을 두고 전 남편과의 양육권 소송 재판이 있어서다. 십수년 전만 해도 소송 제기부터 결과까지 수개월이 걸렸지만,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오늘날은 하루 만에 끝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연진 씨는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십만건의 판례가 축적된 '로(law)챗봇'에 명령어만 입력하면 재판을 준비할 수 있다. 덕분에 연진 씨는 변호사 선임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연진 씨는 로챗봇의 매뉴얼대로 주어와 서술어, 이용 목적 등을 넣은 명령어를 입력했다. "나는 12년 차 중학교 수학 교사야. 4시간 뒤 남편과 양육권 소송에서 승소하고 싶어. 나는 무직인 남편보다 딸을 키울 능력이 있어. 내가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서는 어떤 서류가 필요할까?"

"딸을 키울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소득증명서를 제출하세요. 다만 양육권 소송은 자녀가 이혼 전과 다름없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게 목표라 경제력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딸과 친밀도를 나타내는 사진들과 문자 메시지 등을 준비하세요. 또 재판에서 딸과의 추억들을 회상하듯이 말하세요."

하나를 물으면 둘, 셋까지 알려줬다. 재판이 처음이었던 연진 씨는 로챗봇 덕에 30분 만에 소송 준비를 끝내고 법원으로 향했다. 법정에 들어선 연진 씨가 마주한 것은 AI 판사로 '민사소송 1부 로봇'이었다. 이 로봇은 남편까지 들어오자 "서류를 제출하고 본인이 자녀를 양육해야만 하는 이유를 주장하세요"라고 안내했다.

서류를 제출한 연진 씨. 1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까. 연진 씨의 휴대전화로 10여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이 날아왔다. 결과는 '패소'였다. 결정적인 근거는 남편의 잠재적 양육 능력이 높다는 것이었다.

연진 씨는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무직인 남편의 잠재적 경제력이 자신의 안정된 수입보다 앞선다는 판결문에 의문을 가졌다. 'AI 판사가 공정성을 갖춘 게 맞을까…' 속으로 생각하는 연진 씨. 하지만 여기에 대한 답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지못해 법정을 나온 연진 씨는 몇 걸음을 안 가 법원 정문 앞에서 '인간 판사'들을 마주했다. 지금은 AI 판사에 밀려 실업자와 다름없는 처지에 놓였지만, 만약 이들이 결정권자였다면 소송 결과가 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AI가 인류의 일상에 접어든 상황에서 잠시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5초 만에 정답 내놓는 '챗GPT12.0'

오전 재판이 끝나고 5교시 일정에 맞춰 교실로 온 연진 씨. AI 교과서가 도입된 2025년을 기점으로 10여년 가까인 흐른 현재, 학생들은 태블릿 PC만 있으면 모든 수업이 가능하다.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포킷(Pokeit)에서 제작한 상업용 이미지. 이번에는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포킷(Pokeit)에서 제작한 상업용 이미지. 이번에는 '학생이 태블릿PC를 통해 AI 교사에게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니 위와 같은 이미지가 생성됐다. 포킷(Pokeit)

특히 학생마다 AI 로봇 교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업 진도도 제각각이다. 같은 수학이라도 방정식을 골라 듣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일차함수를 택하는 이들도 있다. 연진 씨는 학생들이 로봇 교사에게 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살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하기도 한다. 수학 문제 사진을 찍어 '챗GPT12.0'에 보내면 5초 만에 정답이 나온다. 학생들의 손은 AI 교과서가 있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사이를 수시로 오건다.

수업이 끝나기까지 10여분이 남았을 즈음, 연진 씨가 학생 '재연' 군을 불러 문제 풀이를 시켰다. 연진 씨가 내놓은 문제는 2차 방정식으로 근의 공식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재연 군은 5분이 다 돼 가도록 하염없이 문제만 바라보고 있다.

보다 못한 연진 씨가 나섰다. 1분도 안 돼 풀이 과정을 써내려 가자 20여명의 반학생들로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기본 중의 기본인 문제를 푸는데 학생들한테 박수받는다고…?' 연진 씨가 속으로 생각한다.

연진 씨는 AI가 학생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정확한 답만 내놓는 로봇으로 학생들이 사고력을 잃고 있다는 우려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도 온전히 그들만의 노력이라고 보기 어렵다. 연진 씨는 오늘날 학생들의 '찐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위기감을 느낀 연진 씨는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와 교육부에 건의할 공문을 작성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직접 문제를 풀도록 하는 교육과정이 도입돼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닥터 왓슨' 하나면 진료부터 처방전까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한 연진 씨. 오전에 치른 양육권 소송에서 패소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두통이 심해지자 연진 씨는 몸을 일으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찾은 것은 AI 의사 '닥터 왓슨'이었다. 왓슨은 생후 건강검진 내역과 실시간 증상들을 파악해 병명을 알려주는 AI다.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이 로봇 덕에 늦은 시간까지 근무한 연진 씨는 굳이 병원에 찾아갈 필요가 없다.

"왓슨, 오늘 아침에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것 같아. 머리도 아프고 몸이 늘어져. 단순 두통인지 몸살이 오려는 것인지 알려줘."

왓슨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38년간의 건강검진 내역을 첨부한 연진 씨. 이내 곧 왓슨이 연진 씨가 착용한 스마트 워치에 접속했다. 혈당부터 산소포화도, 혈압 등을 확인한 왓슨은 수초 만에 '긴장성 두통'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의 증상이 궁금했던 연진 씨는 구체적인 병명을 듣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왓슨은 병명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약 처방부터 복용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처방전에는 타이레놀 같은 상비약이 아닌 의사의 소견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는 약들이 쓰여 있다.

처방전은 연진 씨 집과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24시 약국으로 전달됐다. 곧바로 약국에서 약을 배달받은 연진 씨는 주저함도 없이 알약을 한입에 털어 넣는다.

연진 씨는 왓슨이 내린 처방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처방대로 약을 먹은 경험은 있지만 여전히 의사 없이 내린 처방이 못 미덥다는 생각이다. 실제 각종 매스컴에서 AI 의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약을 처방했다는 사례들도 전해지고 있다. 연진 씨는 다음 날 눈을 뜨고 나서 부작용이 느껴지면 의사를 수소문해 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포킷(Pokeit)이 제작한 상업용 이미지.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포킷(Pokeit)이 제작한 상업용 이미지. '환자가 컴퓨터를 통해 AI의사에게 비대면 진료를 받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줘'라는 명령어를 통해 이미지가 생성된 모습. 포킷(Pok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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