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충남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룩소르 박물관 등 이집트 6개 박물관의 디지털화 작업을 수행 중이다. 이것은 한국이 2조원 대의 탱크를 수출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집트 정부의 요청에 의해 진행되는 국제개발협력사업(ODA)이다. 이집트는 한국이 문화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2023년 6월 일본 시마네현의 인구 17만 도시 이즈모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방황하는 러시아와 그 주변국의 IT 인재들을 고용하는 민관 합작 기관 '피플 클라우드'를 세웠다. CIS(독립국가연합) 혁신인재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은 수학, 물리학 분야의 기초 학력이 우수하다. 시마네현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다. 그러나 이즈모시는 CIS 혁신인재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지역의 IT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
부여와 이즈모의 두 사례는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글로컬, 디지털 전환, 디지털 일자리이다.
첫째 지역은 세계와 직접 연결되어야 한다.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활권이 국경을 넘어 지구 규모가 되었고 경제, 환경, 평화 문제 등 국익을 초월한 이익 실현이 요구되고 있다. 동시에 지역이 중요해지고 있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지역이 무거운 국가를 대신해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 많아지고 지역성 회복의 목소리가 커졌다.
둘째 지역도 완전한 디지털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지역도 수도권만큼 완전하게 일하고 만나고 이야기하며 상품을 거래하는 모든 일상생활을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역의 농민도 서울의 직장인과 똑같이 가상공간 속에 지능화되고 원격화되고, 실감형으로 제시되며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관리되는 농작물을 심고 길러야 한다.
셋째 지역에 디지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2014년부터 '미네르바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유산의 디지털화를 풀뿌리 경제 활성화와 지역 살리기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소득이 낮은 지역민에게 저숙련 디지털 일자리를 제공하면 그들의 임금은 빠르게 지역에 다시 풀린다. 디지털 일자리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계속 전문성을 재고할 수 있기에 지역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과 경제 활동 수준을 높인다.
지방 소멸이란 지역사회의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여 인프라 및 생활 서비스의 공급이 무너지면서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지방 소멸 위기를 이미 한번 경험하고 슬기롭게 극복한 바 있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는 공업화의 여파로 사람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대규모 이촌향도가 일어났다. 이때 지역의 붕괴를 막았던 것은 중수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이었다.
중수는 1972년 4월 26일 열릴 예정이었던 새마을운동 행사에 연설을 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17장의 종이에 깨알 같은 만년필 글씨로 '새마을運動'(새마을운동)이라는 제목의 빽빽한 원고를 메모했다. 그러나 4월 21일 중수는 청와대 뒤뜰에서 발을 헛디뎌 갈비뼈 타박상을 입었고 행사는 연기되었다.
중수는 병상에서 연설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각고의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 5월 18일 광주 전남 실내체육관에서 행해진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 소득증대 촉진대회 연설'이다.
이 연설은 새마을운동의 개념과 원리와 방법을 집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수의 기능주의 근대화 사상을 간결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기능주의 근대화 사상이란 근대화는 곧 합리화라고 주장했던 막스 베버의 근대화 사상을 기능주의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막스 베버는 근대사회의 핵심을 자본주의적 경영체와 관료주의적 국가 기구, 즉 합리화된 기업과 정부라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경영체(기업)는 돈을 벌고(자본 형성), 관료주의적 국가기구는 세금을 거두어 돈을 분배한다(자원 운용). 이 두 가지 조직이 기능적으로 잘 맞물려 목적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근대사회이다.
기능주의 근대화 사상은 이러한 사회 발전과정이 시공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신념 체계이다. 예컨대 소득 증대, 신속 행정, 생산성 발전, 학교 교육 확대, 사회 인프라 구축은 서구에서 실현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똑같이 실현되어야 한다. 도시에 적용되었던 자발적 경쟁의 노동 동원 체계는 농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한 근대화의 체계들은 수학 공식처럼 언제나 똑같이 작동하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중수는 기능주의 근대화 사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바로 <우리도 하면 된다>였다. 중수는 5월 18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농민들이 어떠한 자극, 어떠한 계기를 맞이해서 이런 새마을운동이 일어났겠는가. 나는 지난 60년대 제1차, 제2차 경제 개발 계획을 통하여 우리 모든 국민들이 땀흘려 일해서 이룩한 건설의 성과를 우리 농민들이 직접 자기들 눈으로 보고 우리도 하니까 저만큼 되더라, 하는 데서 우리 농민들이 크게 자극을 받았다고 봅니다. <우리도 하면 된다> 하는 자신감이 우리 농민의 마음속에 생겼던 것입니다."
21세기가 되었다. 60년대 초 세 끼 식사를 두 끼로 줄이고 두 끼를 한 끼로 줄여야 했던 세계 최빈국, 밥을 죽으로 바꾸고 죽을 피죽으로 바꿔도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던 절망의 나라는 어느새 사라졌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의 문장을 인용하면 한국은 미국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용한 문화 초강대국'이 되었다. 우리는 중수의 새마을운동을 21세기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중수는 농촌 마을에 시멘트 포대와 철근 나눠주고 새마을 취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지방에 이집트 문화유산 복원과 같은 디지털 일자리를 나눠줘야 한다. 지방이 그 성과를 자기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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