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3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시 부문 '대머리 족보' - 박희곤

준서는 밀성 박 씨 대종공파 19대 종손이다


시험관 애기로 태어나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모유를 먹고 자랐지만 혈액암 투병으로
머리칼이 모두 빠져버렸다


학교가면 친구들이 대머리라고 놀리면 어쩌냐! 는 준서에게
엄마는 머리칼은 이빨 같이 빠지면 또 난다고 달래었다


시무룩하고 토라져 있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빠는
머리를 깎아 함께 대머리가 되었다


서로 대머리를 만지며 깔깔 웃는다


학교에 입학할 3월이 다 되어가도 나지 않는 머리칼
눌러쓴 모자를 들고 울고 있는 준서
원래 반 대머리였던 늙은 할아버지도 완전 대머리가 되었다


입맛 없어 하는 준서를 위해 오늘 저녁은 국밥집에서
웃고 있는 대머리 돼지국밥을 먹는다


어쩌면 준서가 짧은 여행을 끝내기 전


긴 머리칼 삭발하고 창이 둥근 모자를 쓴 3대가
대머리 국밥에 새우젓 대신
연신 콧물과 눈물로 간을 한다


모자 대신 가발을 쓴 준서 엄마는 힘없이 숟가락만 젖고 있다

박희곤
박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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