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라면 통과의례처럼 치러야 하는 현장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필자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 머물렀다. 2010년 7월,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령고령자'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7월 28일 서류상 111세로 도쿄에서 최장수 남성 노인의 집을 직접 방문해 보니 사망한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나 이미 미라가 되어 버린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조사해 보니 그는 이미 32년 전에 사망했고, 가족들 역시 그의 죽음을 알고 있었지만 유족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시초로 일본 정부는 100세 이상 고령자 전수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비슷한 사례가 연달아 발생했다. 오사카에서는 죽은 지 5년이 지난 91세 남성 노인이 비닐에 싸인 채 발견됐다. 범인으로 밝혀져 체포된 장녀(50대)는 "아버지는 5년 정도 전에 돌아가셨다. 생활비가 부족해 아버지의 연금을 사용했고, 그래서 사망신고를 할 수 없었다"고 자백했다. 당시 2010년 9월 기준으로 100세 이상 고령자 수 가운데 본인의 생사 여부를 실제 확인한 사람은 절반에 그쳤다. 나머지 절반의 고령자는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 '유령고령자'로 판명됐다.
2010년, 일본에서의 여름이 요즈음 새삼 생각나는 이유는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유령아동' 사건 때문이다. 최근에 경기도 수원에서는 30대 친모에 의해 2명의 영아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를 정기 감사한 감사원이 출생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2천236명 가운데 23명을 표본으로 확인하라고 했고, 그 과정에서 2명의 영아가 살해된 것을 발견했다. 이를 시초로 보건복지부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2천236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전수조사 이후에는 또 다른 유사한 사례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령고령자' 사건과 '유령아동' 사건의 접점은 '가족을 대체할 사회적 돌봄의 부재'이다. 유령고령자 사건 뒤에는 여전히 가족이 노인 돌봄의 책임을 전담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식 복지 시스템의 한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노인 돌봄의 문제를 가족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개호보험제도(한국의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했지만, 개호보험제도는 기본적으로 노인을 돌보는 가족원이 집에 상주하고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6년부터는 동거 가족이 있는 경우 생활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제한함에 따라, 일을 하면서 부모를 돌봤던 싱글 돌봄자는 큰 타격을 입었다. 부모가 집에서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부모 돌보는 일에 전념하다가 경력단절로 사회 진출이 어려워지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부모의 연금에 의존하여 살다가 부모가 사망하게 되면 자신의 생활비마저 막막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유령아동' 사건 뒤에는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만 일임하고 있으며,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출생통보제'를 제도적으로 확립하지 않은 정부의 미온한 대처가 자리하고 있다. '유령고령자'와 '유령아동' 사건을 통해 우리는-전수조사를 통해 몇몇 '문제 가족'을 색출하고 벌하는 데 그치기보다는-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족 돌봄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탄탄하게 다지는 작업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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