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때이다. 여름 한밤중에 동네 하심이가 황급한 목소리로 "피란 가이소" 하며 연거푸 외친다. 잠에서 깬 동민들은 무슨 소린가 싶어 동사(同舍)로 모여든다. 인민군이 탱크를 몰고 남쪽으로 쳐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겁에 질린 하심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빨리 서두르십시오 한다.
동네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어찌할 줄 모른다.. 마당에 불을 놓고 자질구레한 짐을 챙기느라 야단법석이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밖에서 먹고 자고 할 것들을 챙기시고, 어머니와 누나는 부엌에서 반찬 만드시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돗자리 하나를 둘둘 말아서 세끼 두 줄로 단단히 묶어 어깨에 걸머메고 길 떠날 준비를 한다.
나는 정신없이 떠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챙길 거 못다 챙기시고 떠날까 봐 걱정한다. 떠나기 전 한 번쯤 뒤돌아보기를 바랐건만,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소 질 매(길마: 소 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는 데 쓰는 연장)에 음식과 가재도구들을 가득 싣고 소를 앞세우고 피란 길에 오르신다. 아버지는 매사에 꼼꼼하셨기에 챙길 거는 다 챙겼을 것이다.라고 믿고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 뒤를 따른다.
도로는 피란 행렬로 북새통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떠밀려 간다. 산 밑에 불을 피워 놓고 허깨비 같은 것이 불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거를 보고 엄마! "저거 뭐고" 하고 묻는다.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마당에 불 피워 놓고 피란 갈 준비 하느라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라고 한다. 한밤중에 똥 마려워 엄마와 같이 통시에 가본 일 말고는 거의 없었다. 응석받이로 큰 나는 전쟁이 무서운 것도 모르고 한밤중에 동네 사람들과 같이 웅성거리며 피란 간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워 가며 걸어간다. 어디까지 왔는지 날이 부옇게 샌다. 인민군이 띄엄띄엄 쏴대는 대포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들린다. 피란 행렬은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대포 소리가 잠시 멈추자, 피란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좌불안석이다. 꼬리 없는 긴 행렬은 앞사람 가는 데로 따라간다. 가다 서다 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어느 작은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또 걸음을 멈춘다. 사람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피란 행렬 앞에서 군인들이 트럭을 세워놓고 피란민들 사이에 군대 갈 연령 되는 장정들을 징집(徵集)하고 있다. 어머니들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징집되어 가는 아들을 붙들고 울며불며 대성통곡한다. 뒤따라오던 둘째 형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형이 징집되어 갔을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눈물 흘리시며 온 사방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는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찾는다. 계곡은 갑자기 아수라장이다. 엄마들의 울며불며 통곡하는 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형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피곤하여 나무 밑에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사이 정신없이 잠들어 버렸다. 그사이 군인들은 장정들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떠났다. 형님은 징집 대상이 안 되었든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지 군인들이 떠난 뒤에 지게 지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을 본 어머니는 울먹이면서 "너 때문에 온 식구가 난리 쳤다고 하며 어디에 있었더냐?" 윽박지른다. "잠이 와서 나무 밑에서 한숨 잤다"라고 태평스럽게 말한다. 아버지는 기가 막혀 "너는 간도 크다. 이 난리 통에 잠이 오더냐?" 화를 내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시면서 얼굴에 눈시울이 붉혀진다.
점심을 먹고 긴 행렬이 곤히 잠들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고종 누나가 3살짜리 젖먹이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며 울며불며 곤두박질친다.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찾으러 나선다. 어디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있네, 있네, 여기 있네. 하고 매형이 아들을 안고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온다. 누나는 잃어버린 아들을 부둥켜안고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잃어버릴 뻔했던 아찔했던 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듯이 행렬 속에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세상은 요술과 같았다. 슬픔에 잠긴 사람을 웃기고 울리기도 한다.
피란길을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던지 가볍든 돗자리가 천근만근이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새카맣고 눈은 쑥 들어가 영락없는 해골이다. 신발은 닳아 구멍이 두 군데 뻥 뚫렸다. 물이 새 들어오고 자갈도 들어온다. 또래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을 보고 부러웠다. 신발 사 달라고 하고 싶지만, 난리 통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구멍 난 신발을 질질 끌고 밤낮없이 걸어간다.
발이 퉁퉁 붓고 힘이 빠질 대로 빠져 한 발짝도 띄기 싫다. 끝없는 긴 행렬이 넓은 강변에 와서 멈춘다. 며칠째 머물면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웅성웅성하던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갑자기 무서움이 든다. 궁금해 아버지께 물어보고 싶지만 싫었다. 피로에 지쳐 아무 데나 누워 세상모르게 잠을 실컷 잤으면 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햇빛에 눈이 부셔도 감기가 싫은 정도로 잠을 실컷 잤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멀리 시커먼 산 아래 흰 글씨로 쓴 '청도역'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제야 여기가 청도라는 걸 알았다. 아버지께서 맏형이 청도 금융조합에 다닌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맏형은 저와 나이로 치면 삼촌뻘이다. 내가 예닐곱 살 때 군위 금융조합에 근무했다. 점심때가 되면 도시락을 갖다주고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대로 길을 물어물어 금융조합을 찾아간다. 맏형은 어머니와 저를 보고 깜짝 놀라시며 어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얼싸안으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맏형은 신발이 다 떨어지고 몰골이 형편없는 나를 번쩍 들어 안으면서 고생 많았지, 하시며 신발가게로 데리고 간다. 그러잖아도 신발이 다 떨어졌다며 신 한 켤레 사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 신나게 따라간다.
청도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한 것 같아 보였다. 시장은 피란민으로 북새통이다. 신발 가게에는 운동화, 백 고무신, 검정 고무신, 코고무신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신발이 가득하다. 주인아저씨는 검정 고무신 한 켤레를 가지고 나와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신어 보라고 준다. 내 발에 꼭 맞다. 아팠던 발이 금세 다 나은 것 같다. 형님한테 고무신 한 켤레 얻어 신고 기분 좋게 어머니와 같이 식구들이 있는 시냇가로 돌아온다.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와 나는 금융조합 관사에서 자고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비를 바라보면서 전쟁의 아픔을 잊은 채 친구들과 뛰놀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아들 잘 있더냐?"라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어머니는 평소에 보지 못한 얼굴로 "잘 있던 꾸마"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을 딱 잘라 한다. 어머니가 평소에 하지 않으시던 표정으로 말씀하는 거를 보고 아버지는 덤덤한 소리로 '그래' 하시고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생전에 아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쏟아낸 말인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멀쩡한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 떼가 몰려든다. 번개가 지나고 하늘에서 쿵쿵 소리 내며 소낙비가 사정없이 쏟아진다. 잠깐 내린 비가 가뭄에 바짝 마른 시냇가 도량을 가득 메워 쏜살같이 흘러간다. 정신없이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햇볕이 쨍쨍하다. 사람들은 세간들을 들고나와 씻고 헹구고 한다. 나는 형님이 사준 새 고무신이 아까워 호주머니에 넣고 물 구경 하려고 냇가에 왔다. 호주머니에 구멍이 난 줄 모르고 또래들과 같이 신나게 물장난한다. 고무신 한 짝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둥둥 떠내려간다. "엄마! 내 고무신 떠내려간다"고 죽을힘 다해 불러 봐도 콸콸 소리 내며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에 내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허겁지겁 물에 뛰어 들어간다. 돌에 미끄러져 물살에 둥둥 떠내려간다. 고무신을 건지기는커녕 남은 한 짝마저 잃어버렸다. 붉은 황토물은 고무신을 집어삼키고 의기양양하게 흘러간다. 아깝다고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하고 물에 떠나보낸 새 고무신, 생각할수록 너무 아깝고 애통했다. 밤중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식구들은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배고픔은 참고 견뎌내기가 힘이 든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나둘 장사하기 시작한다. 덩달아 나도 하고 싶었다. 돈이 어디에서 났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능금을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담아 파는 장사를 시작한다. 한 날은 아버지께서 "누가 널 보고 장사하려고 했나?" 노발대발하신다. 사전에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고 덜렁 능금 장사를 시작했으니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아버지는 장사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으시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고도 못 본 척하신다. 가시밭길 걷는 마음으로 아버지 눈치를 살피면서 나가고 한다. 아버지 얼굴이 일그러져 있을 때면 마음이 불안하고 밖으로 나가기가 서먹서먹했다.
세상에 시간이 해결 못하는 거 없다. 능금을 사고파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기차가 들어오는 기적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능금 바구니 들고 한걸음에 달려간다. 기차가 슬금슬금 들어와 피∼시 거리며 멈춘다. 능금 바구니 들고 기차에 파리떼처럼 새카맣게 달라붙는다. '능금 사이소.' 하며 큰 소리로 외치며 아래위를 오간다. 하루에 몇 바구니 팔고 나면 그런대로 몇십 환 남는다. 재미가 쏠쏠하다. 전쟁도 잊어버리고 돈 버는 데 신경이 쓰인다.
한 번은 철길 바로 옆에 가느다란 전깃줄이 있는 줄 모르고 능금 바구니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전깃줄에 걸려 넘어졌다. 능금이 철로 위에 벌겋게 쏟아진다. 기차가 들어온다며 역 승무원이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나는 안절부절못한다. 쏟아지는 눈물 콧물을 들이마시며 울며불며 허겁지겁 능금을 바구니에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다. 겨우겨우 능금을 다 주워 바구니에 담아 철로를 막 건너 오는데 기차가 '꽥꽥' 기적 울리며 무섭게 들어온다. 까딱 잘 못 했으면 기차에 치여 죽을 뻔했다. 어머니한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시면 기겁하시고 내일부터 당장 장사를 못하게 할 것 같아 꺼내지 않았다.
오늘도 능금 바구니 들고 기차역에 나간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기차 옆에 다가가서 "능금 사이소" 외친다. 어디선가 춘수야! 춘수야! 하며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누군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며 나를 부른다. 한걸음에 달려간다. 고향에 우리 뒷집에 사는 추태돌 아저씨다. 아저씨는 "집에 가거든 우리 엄마한테 내가 군대 가는 것을 봤다고 해라." "예, 알았꾸마" 대답하기도 전에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저씨는 손을 흔들어 주면서 쓸쓸히 떠난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서서 기차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서서 손만 흔들어 주었다.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저씨 무사히 돌아오소"라고 말 한마디 못 했던 것이 늘 마음에 죄송했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낮에 기차역에서 우리 뒷집에 사는 추태돌 아저씨를 봤다고 엄마한테 한다.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가시면서 잡수시라고 능금 한 대수 구리 드리지?"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하시며 목이 메어 말을 더하지 못하신다.
기차가 오는 시각이 아직 멀었다. 세상모르고 천방지축 또래들과 같이 놀고 있다. 점심나절 될 무렵 사람들이 시냇가에 빙 둘러서서 굳은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쑥덕거리고 있다. 또래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시냇가로 달려간다. 빙 둘러서 있는 어른들 틈에 끼어 머리만 쏙 들이밀고 들여다본다. 헬멧에 억새와 어린 참나무 가지로 위장한 군인 다섯 명이 중학생 같아 보이는 어린 사람 5∼6명을 포승줄로 묶어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다.
누군가가 "빨갱이다. 저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다며 저놈을 죽여라!" 고함친다. 아무리 둘러봐도 빨갱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 눈에만 보이는가 하고 어른들 얼굴만 쳐다본다. 인민군을 빨갱이라고 불렀던 거를 모른다. 그제야 인민군이 빨갱이라는 거를 알았다. 똑똑히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어디론가 끌려가고 볼 수 없었다.
능금 바구니 들고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시각에 맞춰 나간다. 갑자기 먼 데서 대포 쏘는 소리가 펑펑거리며 요란하게 들려온다. 하늘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폭탄이 터지고 얼마 있다가 '짜르르 짜르르' 거리며 유리창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겁에 질려 허둥대며 바쁜 걸음으로 천막으로 돌아온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다.
B-52 폭격기, 호주기(제트기), 쓰리비행기(수송기)등 수십 대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다. 대포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비행기가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포탄을 비가 쏟아지는 듯 퍼붓는다. 포탄 터지는 소리에 피란민들은 불안에 떨며 어찌할 줄 모른다. 흉흉한 소문이 날개를 달고 퍼진다. 빨갱이들이 낙동강 방어선 최후의 보루인 따본 재(다부동 재)까지 쳐내려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피란민들은 불안해하며 주위에서 들었던 헛소문이 마구 쏟아진다. 한국전쟁에서 최대 격전지로 불리는 다부동 전투는 국운이 걸렸다고 한다. 국군과 인민군은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군이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면 대구 부산은 하루 만에 공산 치하로 끝날 형국이다. 대구, 부산만 남겨 놓은 인민군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밀어붙인다. 국군은 사력을 다하여 방어선을 지켜야 한다. 1개월 동안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으로 국군의 힘이 거의 소진될 무렵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戰勢)가 뒤집혔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피란민들은 환호하며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국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충천했다.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들을 격퇴하고 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고 퍼진다. 현인의 노래 『낙동강아 잘 있거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불렸던 이 노래는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오후 비행기에서 뿌린 삐라가 햇빛을 받아 빤짝이며 땅으로 내린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싶어 주우려고 우르르 몰려든다. 나도 한 장 주워 읽어 본다. 큼직한 글씨로 인민군이 국군에 밀려 북으로 밀려갔다는 소식이다. "아버지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거지요" "그렇단다" 하시며 한숨을 내 쉬며 아버지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또래들한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얘기를 했더니 만세! 만세! 만세 하며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고 했다.
지긋지긋한 피란 생활을 마치고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어머니와 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형님한테 인사하러 간다. 어머니는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몸조심하거라 하시며 아들 등을 도닥여 준다. 비참하고 처절했던 순간들을 죽을힘 다해 버텨 온 우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쁜 소식보다 더 반가운 거 없다.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마음이 들떠있다.
긴장이 풀린다. 피란 길을 떠날 때는 살려고 몸부림쳤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챙기려니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집까지 걸어갈까? 여태까지 먹고 지내온 거라고는 꽁보리밥에 조림 콩이 전부였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는 것도 옳게 먹지 못하고 긴장 초조 불안에 떨면서 지내오는 동안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수백 천 리 되는 머나먼 길을 이런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살 수 없다. 어쨌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피란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북적이는 행렬에 끼어든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라비틀어진 산 송장과 같다.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고 떠들며 걸어간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과 같이 출발했는데 어디쯤 왔던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피란 갈 때나 올 때나 한결같이 소를 앞세우고 뒤따르신다. 식구들이 힘들어 보이면 아버지는 길옆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고 한다.
피란 갈 때는 영천 신녕재를 넘어 도랑 따라갔는데 돌아갈 때는 그 길이 아닌 것 같다. 도랑이 안 보이고 자갈도 모레도 없다. 길옆에 가로수가 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아버지가 이 길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따본 재(다부동 재)가 나온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천평이 나온다. 천평을 지나면 우리 집이 보인다.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용기를 주신다. 집에 다 와간다는 말씀에 마음이 들떴다. 돗자리 하나 걸머메고 아픈 다리 절뚝거리면서도 힘이 솟구친다.
우리 식구는 잠시도 쉴 사이 없이 길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헐떡이며 올라간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산꼭대기에 올랐다. 편편한 곳에 자리 잡고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쉰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깨끗이 씻겨주고 얼굴에 하얀 소금기를 남겨 놓고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 가슴을 펴고 코를 벌렁거리며 숨을 끝까지 들이마신다.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둘째 형은 어디에서 들었든지 전쟁 중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바로 이곳 따본 재(다부동 재)다.라고 하며 이야기한다. 산이 높고 험준해서 길을 똑바로 낼 수 없어 구불구불하게 닦아 흡사 뱀이 따 베이(똬리)를 틀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따본 재다."라고 부른다고 한다.
청도에서 여기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총격전을 벌이면서 공격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군이 빨갱이를 향해 1m 간격으로 포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애매한 우리 군인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살벌했던 따본 재(다부동 재). 사방이 쥐 죽은 듯 바람 소리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음산하고 적적해 슬며시 무서움이 든다. 어디에서 빨갱이가 곧 나타날 것 같아 숨죽여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에는 포탄으로 학교 운동장만 한 웅덩이가 여기저기 파여 있다. 그 안에는 국군인지 빨갱이인지 알 수 없는 죽은 시체 수십구가 총을 든 채로 한데 뒤엉켜 있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으며 이랬을까? 가슴이 섬뜩해진다.
사람이 죽어있는 시체를 처음 본 나는 기겁했다. 웅덩이 옆에는 탱크 여러 대가 녹슬어 흉물스럽게 나뒹굴어져 있다. 대포 싣고 위장한 트럭이 계곡 창에 처박혀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머리가 삐죽삐죽 선다. 무섭고 떨려 "아부지요! 어서 내려가시더 무서워 죽게꾸마"하며 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는 "그래" 하시면서 큰 소리로 '이라'하며 소 엉덩이를 한 대 때린다. 소는 꼬리를 하늘로 지켜 들고 내달린다. 아버지는 이놈 봐라, 먼 길까지 끌고 다녔다고 나한테 화풀이하나? 하시며 코뚜레를 잡아당긴다.
소 뒤를 따라 내려오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버지요, 이게 무슨 냄새인 교"하고 물었다. "시체 썩는 냄새란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앞만 보고 어서 따라오너라 하시고는 더 이상 말씀이 없었다. 좀처럼 무뚝뚝한 말로 하지 않는 아버지였는데 왜일까? 의아해하며 아버지를 한 번 힐끗 쳐다본다.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고 수심이 가득해 보인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가끔 건들바람이 불어오면 시체 썩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아 코를 틀어막는다. 그럼에도 시체 썩는 냄새는 좀처럼 막을 수 없다. 숨 쉴 때마다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길 양편에는 죽은 지 오래된 해골과 갈비뼈 다리뼈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금방 죽어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보이는 시체도 어지럽게 누워있다. 피가 낭자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고 반듯이 누워있는 시체를 보고 무서워 엄마 치마 붙들고 엉엉 울었다. 피비린내, 시체 썩는 냄새가 한데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산골짝에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냄새에 기죽은 나는 입이 바싹 마르고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간신히 그 길을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무서움이 가시지 않고 생생했다. 무서움에 뒤돌아볼 생각이 전혀 없다. 바쁜 걸음으로 걸어간다. 저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뒤를 달려오고 있다. 겁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운전사가 차를 멈추면서 "어디로 가나?" 묻는다. "군위로 갑니더." 같은 방향으로 간다며 차 뒤에 타라고 한다. 아버지께서 "둘째형과 나는 소하고 같이 걸어가마, 너희들끼리 타고 가거라"라고 재촉 하신다. 천지도 모르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대로 차 뒤에 올랐다. 어디쯤 왔을까 군위 선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아저씨가 차를 세운다. "여기서 내려야 한다"라고 한다. "고맙습니더." 고개를 수없이 끄덕였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천천히 걸어간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뒤를 힐끗 돌아본다. 아버지와 둘째형이 부지런히 소 뒤를 따라온다.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부지요! 여기서 우리 집까지 몇 리 됩니까?" "70리 정도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여름 한밤중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우리 앞에 간 사람들이 피워놓은 불을 쬐려고 불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찬기를 녹이고 똥 단지같이 무거운 봇짐을 짊어지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우리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이 불을 더 지피려고 길가에 있는 쓰레기를 주섬주섬 모으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난다.
정신없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우리가 떠난 그 자리에 불을 쬐려고 앉았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는 그 사람이 불을 더 지피려고 끌어모은 쓰레기 속에 터지지 않았던 총알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살려고 고생하며 멀고 먼 피란 길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저렇게 무참하게 죽다니! 세상이 참으로 무심하지, 생전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사람을 저토록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한단 말인가?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내 쉰다. 그 자리에서 한 발만 늦게 일어섰더라도 우리 식구들은 한꺼번에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아찔한 순간을 모면했다.
캄캄한 밤이 조금씩 훤해지기 시작한다. 동쪽 하늘이 불그스레 물들고 낯익은 산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아부지요! 우리 집에 다 와 가능게?" 또 물었다 "그래, 십 리쯤 남았다."라고 하신다. 멀리서 우리 동네가 희미하게 보인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우리 집에 다 왔구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음뿐이다. 다리가 천근만근 걸음을 제대로 띨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몽 같은 전쟁 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살아왔다는 기쁨보다 집에 돌아왔다는 기쁨이 더 크다.
우리 식구는 모두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이백여 호 넘는 동네는 연기에 싸여 시커먼 잿더미만 남아 있다. 아직도 연기가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볏짚과 서까래 타는 냄새가 가시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폭격당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우리 집 근처에도 타다 남은 하얀 연기가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다. 혹시 우리 집이 아닐까 방정맞은 생각이 든다. 집 앞에 들어선다. 둑 다리는 온데간데없고 집은 새까만 숯덩이로 변해 버렸다.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타 버린 집터를 멀거니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희망을 걸고 아픈 다리를 끌고 걸어왔건만, 우리 가족 모두는 넋 잃어 망연자실에 빠졌다. 좌절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들이닥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울먹이며 동네 언덕배기에 홀로 두고 간 이사(理事) 할머니가 걱정되어 찾아간다. 나도 엄마 따라간다.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이 맞아주신다. 피란 생활하느라 고생 많았지? 하시며 목이 멘 말씀을 하신다. 할머니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울먹이시며 그동안 일어났던 이야기 하신다. 나는 목이 말라 물 먹고 싶어 바가지로 물두멍에 있는 물을 떠 마시고 조금 남은 물을 마당에 뿌렸다. 할머니가 보고 기겁하시며 "애야, 물을 아껴써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할머니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시고 전투가 한창 벌어질 때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단다. 길거리에 쥐새끼 한 마리라도 얼씬거리지 못했다. 비행기가 어디에서 날아왔던지 날아와 총을 마구 쏴댄다. 그래서 몇 발짝 안 되는 우물까지 가려면 밤에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간다. "너 집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어제 아래 폭탄을 맞고 불에 타버렸다." 집이 불타는 거를 보고도 어쩔 수 없었다.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 흘리시며 무서웠던 당시 상황을 조용조용 이야기해 주신다. 살아온 것만도 천만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타다 남은 서까래로 움막 같은 집을 우주 부리 지어 살고 있었다. 아버지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목수 한 분이 있었다. 점심나절에 놀러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번듯한 집 새로 짓고 사소."하며 권한다. 아버지도 마음이 있었던지 "글쎄다, 하시며 어디 한번 생각해 봄세"라고, 말씀하신다. 새로 집을 짓게 되는구나! 철없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짓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거들어 주는 바람에 빨리 지었다. 처마랑 뒤주랑 마구간 등 흙으로 바르는 뒷일이 많이 남아있다. 형과 누나 모두 학교에 가고 아버지 혼자 흙을 이기고 바르고 한다. 방과 후 아버지 하는 일을 도왔다. 아버지는 흙칼(흙손의 방언)로 흙을 바르고 나는 흙을 한 주걱씩 떠주고 했다.
멀건 피죽 한 그릇 먹고, 새참이라 해 봤자 보리등겨로 만든 '개떡'이 전부였다. 이걸 먹고 아버지 뒷바라지하기에는 무리였다. 한 번은 코피 나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어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흙을 빨리 떠 달라며 흙칼로 미장 흙판을 두드린다. 이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어린것이 쓰러질 것 같은데 집이 무슨 대수냐? 흙 주걱을 빼앗아 내팽개쳐 버린다. 이런저런 사연도 많았지만, 동네에서 제일 먼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웅크리고 새우 잠자든 다리를 쭉 펴 편안히 잠잘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따뜻한 봄이 우리 집 안방까지 찾아와 꽃을 피운다. 큰누나가 시집을 간다. 신랑 되는 사람이 선보려고 우리 집에 왔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밥을 먹으면서 밥을 한 숟갈 불룩하게 떠서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고 하신다. 직업도 공무원이고 굶어 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하시며 어린것을 시집보내기로 마음먹으셨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어린것이 시집을 가서 잘 살아야 할 텐데 걱정스럽게 말씀하시며 담뱃대에 불붙어 댕기신다.
세상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전쟁을 잊고 봄맞이하며 일상화한다. 그럼에도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전쟁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전방에는 얼어붙은 찬 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비행기가 새까맣게 하늘을 나르고 포탄 퍼붓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도로에는 군인들을 실은 나르는 트럭이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전속력으로 북으로 올라간다. 대포를 끌고 가는 트럭, 트럭 뒤에 무엇을 실었는지 보이지 않도록 푸른 천막으로 꼭꼭 덮은 트럭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천방지축 뛰노는 조무래기들은 전쟁의 무서움도 모르고 줄지어 북으로 올라가는 트럭을 구경하는 것이 그저 즐겁고 신난다. 군인 아저씨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 아저씨들도 손을 흔들어 준다. 기분이 좋아 손을 더 흔들어 주고 한다. 비가 오면 피할 수 있어도 배고프면 참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미군들이 트럭을 타고 전쟁터로 올라가면서 통조림, 사탕, 껌, 비스킷, 구슬 등을 던져 주고 한다. 그중에 제일 맛있는 것은 콩 통조림이었다. 우리는 '헬로, 오 케이' 하면서 사탕 등을 주우려고 벌 떼처럼 우르르 몰렸다 흩어졌다 한다. 누가 더 많이 주었냐? 하며 자랑하기도 한다.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른다.
동네에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들면서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의 숨통을 쥐어짜면서 피를 마르게 한다. 동네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게 어수선한 나날을 보낸다. 입대하게 될 형들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입영통지서 받은 집을 찾아가 위로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씩 한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형은 마루에 걸터앉아 가위로 손톱과 발톱을 깎아 종이에 싼다. 혹시나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을 때 그것을 불에 태워 재를 만들어 따뜻한 양지쪽에 묻어 달라고 한다. 손톱을 깎으면서 벌벌 떨고 있다. 생과 사가 갈리는 무서운 갈림길에 서 있는 형을 보고 나중에 나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떨리고 무서움이 든다.
형들이 입영하는 날 아침. 동사(同舍) 앞마당에서 풍물 소리가 요란하다. 또래들과 같이 나가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풍물을 두드리면서 군에 가는 형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한다며 덩실덩실 춤을 힘을 실어 준다. 형들도 반공 멸공이라고 쓴 머리띠를 매고 양손을 불끈 쥐고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같이 춤추며 목청을 한껏 돋워 노래한다.
형제가 같이 군에 가는 집도 있다. 군에 가는 두 아들을 보고 엄마는 슬픔에 잠겨 넋을 잃었다. 사람들은 애틋한 마음으로 위로해 준다. 양손을 불끈 쥐고 손 흔들며 용감히 떠나는 형들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하다. 동민들은 따뜻이 배웅한다. 엄마들은 떠나는 아들을 붙잡고 대성통곡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엄마들이 쏟아낸 피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집결 장소에 수십 대의 트럭이 기다리고 있다. 형들은 호명하는 대로 한 사람씩 차에 오른다. 차량이 서서히 떠난다. 차는 부모님들의 애타는 심정도 모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달린다.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초가을.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군인 8명이 총을 메고 목에 담요를 둘둘 감고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집에 들어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한 선임자가 전투 작전 중이라며 방 한 칸 있으며 며칠간 머물다 가도록 해주십시오. 하며 정중히 말을 한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상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얼떨결에, 아랫방이 있으니 거기서 며칠간 머물다 가라고 허락하신다.
군인들은 낮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밖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와 잠을 자고 한다. 한 번은 비가 추적거리는 어느 날 밤, 아랫방에서 밤새도록 툭툭거리며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비명에 잠이 깬 어머니가 듣다못해 아랫방으로 달려간다. 여보게 이 사람들아!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 패면 어떻게 되나 말로 하지 하고 말린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먹으려고 해 놓은 따뜻한 시루떡을 커다란 접시에 수북이 담아 준다. 그래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밤은 조용히 보내는 것 같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도 군대 가면 저렇게 심한 기합을 받을까 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며칠 지난 뒤 선임자가 그동안 도와주신 덕분으로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간다면서 인사한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불쌍한 내 새끼들 하고 손을 흔들어 주시며 배웅한다.
여덟 명의 군인이 떠난 뒤 한 달가량 쯤 되었을까? 우리 동네에 군부대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동네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줄로 알고 있는데 왜 우리 동네에 부대가 들어오지? 하며 의아해한다. 군부대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봉건사상에 뿌리 깊은 부모님들은 혹여 자식들이 잘못될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동사(同舍)에 군 지휘 본부가 들어섰다. 본부 근처에 놀러 가보자며 또래들과 같이 간다. 본부 앞에는 헌병이라고 쓰여 있는 헬멧을 쓰고 왼쪽 팔에는 헌병이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있는 한 헌병이 열 중 쉬어 자세로 기둥처럼 꼿꼿하게 서 있다.
버클은 반짝거리고 구두는 반들반들하다. 키도 크고 너무 멋있어 보였다. 헌병들이 줄 맞춰 걸어갈 때 바짓가랑이 밑에 무엇을 넣었는지 철렁철렁하는 소리를 낸다. 나도 삼베 끈으로 바짓가랑이를 묶고 그 속에 다마(구슬)를 넣어 걸어 봤으나 헌병들처럼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아 실망했다. 군에 가면 헌병처럼 멋있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
점심 먹고 또래들과 같이 부대 앞에서 놀고 있었다. 한 헌병이 고무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무줄 가지고 싶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헌병한테 가서 고무줄 달라고 애원해도 주지 않는다. 속이 상해 뺐다시피 해서 가지고 우리 집으로 달렸다. "거기 서지 못해!" 하는 헌병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겁에 지려 그 자리에 폭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헌병이 내 곁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철렁철렁 소리가 가깝게 들리자 가슴이 쿵덕 방아 찧는다. 헌병이 내 곁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고무줄이 그렇게도 갖고 싶더냐?" 하며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아저씨처럼 바짓가랑이를 고무줄로 묶고 그 속에 구슬을 넣어 철렁철렁하며 걸어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겁에 질려 말을 더듬거리며 더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헌병이 자기 포켓을 더듬어 보더니 고무줄 몇 개를 꺼내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걸어간다. 철렁철렁하는 소리가 멀리 사라져 간다. 한숨을 내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소문이 동네에 쫙 퍼졌다. 부대 때문에 불안하고 걱정했던 부모들이 안심하게 되었다. 동네에는 우리 누나 또래가 셋이 있었다, 육촌 누나, 이웃 누나 셋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삼총사라고 불렀다 한다. 우리 누나가 제일 먼저 시집을 갔다. 육촌 누나는 성격이 성글성글하고 재밌다. 재담과 재치가 있어 어디에 가서도 항상 제일 앞장서서 유창한 말로 재밌게 이야기하며 친구들 사이 인기가 대단했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피고 지고 한다. 성글성글 하던 육촌 누나가 부대에 있는 의무 장교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고집이 센 오촌 당숙의 극구 만류에도 당할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전쟁이 할퀴고 간 텅 빈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군인들과 동네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성대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누나는 장교 따라 육군 야전 병원이 있는 경주로 떠났다. 누나 하나는 미군 장교와 결혼했다. 당시에는 미군 병사와 결혼하면 양공주라 했다. 누나는 창피해서 밖에 나오지 못하고 항상 집에만 있었다. 한두 해쯤 지났을까? 그 누나는 미군 장교 따라 미국으로 들어갔다.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랑의 힘은 알 수 없는 무한한 힘과 위력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하다. 국경을 초월하여 한 형제가 될 수 있으며 적도 이해와 용서로 모든 것을 감싸 주며 시들어지거나 불에 타 없어지지도 않는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했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 고독하고 쓸쓸한 암흑세계와 같다. 하늘이 내려주는 사랑은 영원하리라.
피란길에서 돌아온 지 삼사 년 남짓 되었을까? 전쟁 중에 포로(捕虜)로 잡혀 온 인민군 십여 명이 우리 동네에 왔다. 주민들은 저것들 때문에 우리가 죽을 고생을 다 했다며 보기도 싫어한다. 동네마다 사는 형편이 조금 여유가 있는 집에 한두 명씩 먹고 자고 해 주었다. 우리 집에는 체구가 크고 건장한 세 명이 왔다. 쇠도 먹으면 녹인다는 한창 먹을 나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아시고 그릇이 모자랄 정도로 밥을 불룩하게 떠 준다.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눈 깜짝할 사이 다 먹어 버린다. 어머니는 소를 키우는 것이 낫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소보다 더 많이 먹으니, 감당이 불감당이라 하며 혀를 찬다. 일 년 내 우리 집 살림이 거덜 날 것 같다며 걱정하신다.
세 사람은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농사일도 거들어 주고 자질구레한 일도 도와주고 한다. 힘이 세서 무거운 짐을 옮길 때면 몸을 아끼지 않고 수월하게 옮겨 준다. 한 달가량 가까이 지내다가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고 한 사람만 우리 집에 남았다. 아버지는 키도 크고 인심도 좋아 보인다며 마음속으로 은근히 좋아하신다. 이름도 물어본다. '이초재'라 한다며 공손히 대답한다. 아버지는 아래채에 있는 방을 주면서 아들과 같이 우리와 같이 잘 지내자며 다소곳이 이야기하신다. 나는 초재 아저씨라 부른다.
여름이 가고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 드린다. 한 번은 초재아저씨 방에 찾을 거 있어 방문을 열자, 방안에 향긋한 냄새가 난다. 코를 흠흠 거리며 방구석에 있는 궤짝을 열어본다. 빨갛게 익은 능금이 가득하다. 아버지한테 이야기했더니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신다. 아버지가 아저씨를 조용히 부른다. 아저씨는 내용도 모르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어앉는다. 네 방에 들어가 봤더니 궤짝에 능금이 가득하더구나. 내 평생 이런 꼬라지(꼬락서니) 처음 봤다. 어디에서 그런 나쁜 짓을 배웠느냐? 배가 고프면 밥을 더 달라고 하지 왜 남의 능금을 따 먹느냐 하시며 야단치신다. 아저씨는 잘 못 했다고 두 손 빌며 용서해 달라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버지는 아저씨에게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하지 말거라 하시며 등을 쓰다듬어 주신다. 서너 해 지났을까? 아버지는 사람을 겪어보니 심성도 좋고 나무랄 때 없다고 하시면서 뒷집 처녀와 결혼을 주선해 준다.
그들은 몇 년 동안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낸다. 어느 날 아침 부부가 부산에 가서 장사하고 싶다면서 아버지한테 이야기하러 올라온다. 아버지는 "그래" 좋은 대로 해라. 하시면서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긴 돈 얼마를 꺼내어 그 사람 손에 쥐여 주면서 가서 잘 살아라. 하시며 보낸다. 그들은 떠났다. 잊어버릴 무렵 소식도 없이 초재 아저씨는 색시와 같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엄마는 색시 손을 덥석 잡아주시며 잘 지냈나 하며 반갑게 마중한다. 방에 들어와서 아버지한테 큰절을 올리면서 어르신 덕분에 예쁜 색시도 얻고 장사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드린다. 잊지 않고 찾아줘 고맙네! 그동안 잘 지내고 있다니 반갑네. 하시며 덕담을 잊지 않으신다. "어디에 가서 살던지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면 성공할 것이네"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전쟁이 가져다준 후유증은 말할 수 없다. 피란길에서 돌아온 또래들은 할 일이 없어 땅따먹기, 구슬치기, 말타기, 자치기, 딱지치기, 숨바꼭질 등이 전부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거늘 자녀들은 무엇을 보고 자랄까? 어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후세에 남긴 유산이라고는 기껏 사람 죽이는 살상 무기뿐이다.
여느 여름. 십여 명 또래가 형들과 같이 동네에서 2㎞ 떨어진 냇가에 목욕하러 간다. 동구 밖을 지나 큰길 따라가다 밭두렁 길로 빠져 그 길 따라 쭉 걸어간다. 길 양편에는 사과밭, 당근밭, 무밭도 있다. 사과는 불그스레하지만 덜 익어 맛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당근은 먹음직스럽게 보여 주인 몰래 캐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주인한테 붙잡히는 날에는 잃어버렸던 당근 값을 죄다 물어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당근밭에 눈길도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간다.
형들이 앞에 가고 우리들은 뒤따라간다. 능금 밭을 막 지나가려는데 앞에서 갑자기 '쾅쾅'하는 소리가 고막을 뚫고 지난다. 우리는 엉겁결에 밭둑 밑으로 기어가 얼굴을 땅에 묻고 엎드렸다. 얼마 후 고개를 조심스럽게 쳐들고 밖을 내다본다. 또래들도 고개를 쳐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앞에 가던 형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능금나무 가지에 형들의 옷가지와 살이 갈기갈기 찢어져 걸쳐있다. 찢어진 살에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또래들은 기절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렸다. 동구 나무 아래 계신 어른들한테 헐떡이며 일어났던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은 땅속에 묻어 놓은 '지뢰'를 밟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입이 바싹 마르고 겁에 질려 벌벌 떨렸다. 엄마는 내가 놀랐다며 녹두를 맷돌에 갈아서 한 대접을 먹인다.
전쟁은 건강하고 티 없이 맑게 자라야 할 어린 새싹들의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학교에서 운동회 할 때 기마전(騎馬戰)은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종목이다. 기마전은 한쪽 편은 붉은 띠 다른 한편은 청색 띠를 머리에 두르고 상대편 대장을 먼저 잡아채는 편이 이기는 경기다. 어린것들이 눈에 불을 켜고 상대편 대장을 잡으려고 지혜를 짜고 논의하는 것을 본다. 어른들을 뺨칠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하다. 꼭 그러한 것만 아니지만, 세상모르고 한창 재미있게 뛰어놀고 공부해야 할 어린 새싹들에 시기와 질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전투 놀이 등을 보면서 하나하나 전쟁의 아픔을 되살려 본다.
찌는 듯한 여름. 여남은 되는 또래들이 소먹이로 산에 간다. 키가 제일 크고 덩치도 큰 녀석이 우리 심심한데 병정놀이하며 놀자고 더듬는 말로 꺼낸다. 우리는 모두 좋다며 빙 둘러앉아 놀이를 어떻게 할까? 논의한다. 실탄은 솔방울과 어린 억새로 한다. 그리고 상대편 고지를 먼저 "점령했다"라고 고함치는 편이 이기는 편이다. 싸움에서 지는 편은 벌칙으로 다음날 소 먹이러 올 때 '개떡' 두 개씩 가져올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두 편을 갈라서 '개떡' 두 개 걸고 전투가 시작된다.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서로가 공격했다 밀렸다 하며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 상대편 고지 8분 능선까지 올라온 우리는 상대편 고지를 목전에 두었다. 나는 선두에 서서 우리 대원들에게 돌격을 지시했다. 숨죽여 기어 올라가는데 뜻밖에 나는 어린 소나무를 베고 남은 날카로운 끝부분에 왼쪽 무릎이 걸려 넘어지면서 뼈가 하얗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피 흘리면서 공격을 늦추지 않는다. 러닝셔츠를 째서 다리를 둥둥 감고 계속 돌진하는데 내 뒤를 따라 올라오던 또래가 보이지 않는다. 걱정되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내가 소나무에 걸려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쿵'하는 소리가 산천을 찢어질 듯 울린다. 나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숨죽이고 있었다. 방금 내가 그 자리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진격하든 또래들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 나는 쪽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얀 연기가 꼬리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떠들썩했던 산이 갑자기 숨소리 죽었다. 전쟁 중에 불발이었던 수류탄을 밟았던 것 같다. 또래는 말없이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우리는 해가 넘어가고 소를 몰고 침통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한테 일어났던 이야기 한다.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또래가 죽은 부모님 집에 달려가서 위로하고 돌아오신다. 어린 소나무 끝에 깊게 째진 무릎을 보시고 뼈가 부러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하시며 밀가루 반죽에 식초를 섞어 째진 살에 붙어주신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살아온 나는 죽은 또래를 생각하며 한없이 울었다. 차라리 이렇게 죽을 바에 아예 태어나지 말 걸, 넋두리 생각도 해 봤다.
'안다리'라고 부르는 또래가 있다. 많이 안다고 안다리라고 부른다. 여럿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찾아가서 거들어 댄다. 어느 날 또래들이 여럿이 앉아 놀고 있는데 안다리가 어디에서 주웠는지 기관총 총알 세 개를 가지고 왔다. 또래들은 신기해서 빙 둘러앉아 구경한다. 안다리가 탄피 끝에 있는 탄알을 꺼내려고 망치로 두드린다. 망치를 잘못 쳐 손가락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억지로 뾰족한 탄알을 꺼낸다. 탄피 속에 노란 좁쌀 같은 것이 소복이 들어있다. 무언가 싶어 끄집어내 다항(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파란 불꽃을 내며 '피시시'하는 소리를 내면서 금방 타버린다. 냄새가 향긋하다. 총알과 탄피를 가지고 가면 돈 많이 주는 데 있다며 어깨를 으쓱이며 뻐긴다.
그 말을 듣고 또래들은 총알을 어디에서 주웠나 하고 물으면서 이산 저산 산골짜기를 헤맨다. 보물찾기에 퉁퉁 부은 나도 그날따라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양지바른 한 곳에 탄피가 수북이 쌓여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탄피를 주워 왔다. 집집이 탄피가 수북하다. 한번은 안다리가 우리 이렇게 심심하게 놀 것이 아니라 탄피 따먹기를 하며 놀자며 말을 꺼냈다. 모두가 좋다고 했다. 탄피 따먹기에 정신없는 우리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탄피를 호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어 탄피 따먹기를 하려고 모여든다. 어느 때는 종일 해가 빠지도록 놀다 집으로 간다. 아버지는 그거 하면 배부르냐? 성화를 부리신다. 그 후 집으로 들어갈 때면 아버지가 계시는지 살펴보고 들어가고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십여 명 넘는 또래들이 모여 탄피 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다리가 또 어디에서 주웠던지 기관총 총알 세 개를 가지고 왔다. 또래는 빙 둘러앉아 안다리가 탄피에 박힌 총알을 꺼내려고 망치로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나는 겁이 많아 멀쩡히 앉아 구경한다. 안달이가 망치로 탄알을 두드리다가 잘못 때려 총알 밑 뇌관을 때렸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둘러앉아 구경하든 또래 둘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부모님들이 울고불고 난리 났다.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안다리를 잃은 우리들은 하늘을 보면서 한없이 원망했다. 하느님 어찌하여 불쌍하고 재밌는 안다리를 하늘나라로 왜 데리고 갔습니까? 돌려보내 주십시오. 모두 엉엉 울었다.
겨울에 친구들과 같이 나무하려고 간다. 솔 갈비를 끌어모으고 삭다리(석정이: 나무에 말라죽은 가지)를 낫으로 잘라서 한곳에 모으느라 정신없다. 어디에서 '타당'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예사로 들었다. 바로 옆에서 나무하고 있던 친구가 헐레벌떡거리며 숨 가쁘게 달려온다. 같이 나무하려 온 친구가 죽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소리가 났던 데로 뛰어간다. 나무는 지게에 반쯤 해있고 친구는 한쪽 팔이 날아가 버리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 우리는 기절했다. 얼굴에는 피가 낭자하고 떨어져 나간 팔에서 피가 주~욱 뻗치고 있다. 옷을 찢어 팔을 질끈 맸다. 같이 간 어른들이 친구를 업고 병원으로 갔다. 나무하려고 갈때는 사지가 멀쩡했는데 팔이 하나 없어졌다. 가슴이 싸늘했다.
죽고, 팔다리 잃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학교에 다닌다. 학교가 불에 타 허름한 건물에서 수업한다. 말이 건물이지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쓰려질 듯한 헛간보다 못하다. 구석에는 거미줄이 처져 있고 군데군데에 곰팡이가 피어있고 바닥에는 습기가 올라와 도저히 수업할 수 없다. 선생님께서 집에서 가마니 한 장씩 가지고 오라고 한다. 새 가마니도 있고 낡은 가마니도 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안은 하얀 먼지로 가득하다. 신발 신고 들어온 녀석도 있어 먼지가 더욱 심하다. 반공일(토요일) 되면 가마니를 교실 밖으로 들고나와 햇볕에 말린다. 가마니를 막대기로 두드리며 먼지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털고 한다. 차례대로 가마니를 깐다. 내 자리에 새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일 햇볕에 말린 가마니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다. 기분이 참 좋다. 겨우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산수를 갓 지난 나이. 미래는 보이지 않고 과거만 보인다. 어린 시절 한 많은 피란 생활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한다. 돗자리 하나만 달랑 걸머메고 피란길을 떠났던 생각. 피란길에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들의 통곡하는 울음소리, 아이를 잃어버린 애절한 어머니들의 울음소리, 이름 모른 군인들이 죽어 시체 섞는 냄새, 지뢰 등에 귀중한 목숨을 잃은 또래들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어린 가슴에 맺힌 전쟁의 아픔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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