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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매일시니어문학상] "작품마다 수십 년 생애 압축…시니어문학 본령 보여줘"

제9회 응모작 심사 총평…논픽션 32편·시(시조) 790편·수필 530편 총 1352편 접수
애달픈 사연 원고지에 기록…삶·생채기 담은 작품 다수
7월 7일 매일신문 창간기념호에 발표

김인숙 소설가
'2023 매일시니어문학상' 심사위원들이 20일 매일신문 3층 회의실에서 응모 작품을 심사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매일신문은 제9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작으로 김영애 씨의 '그날'(논픽션)을 선정했다. 논픽션, 시, 수필 3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한 심사를 통해 대상작 '그날'을 비롯해 부문별로 당선작 5편씩 선정했다.

지난달 14일 응모작 접수 마감 후 20일 매일시니어문학상 예심이 열렸다. 올해는 논픽션, 시, 수필 3개 부문에 걸쳐 모두 1천352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부문별로 ▷논픽션 32편 ▷시(시조포함) 790편 ▷수필 530편이다.

심사위원들은 시니어들의 삶을 노래한 작품이 많았으며 낙선작으로 꼽기 아쉬울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고 평했다. 작품마다 수십 년의 생애가 압축돼 있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인숙 소설가는 "시니어문학의 본령을 보여준다. 한 평생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고달은 일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애달픈 사연을 원고지 100매 안팎에 옮겨적는 일은 그야말로 '쏟아붓는'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기옥 수필가도 "주제에 대한 제한은 없었으나 굴곡진 삶에서 생긴 아픔과 상채기가 녹아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논픽션 심사평…정제되고 절제된 이야기들

장정옥 소설가
김인숙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장정옥 소설가
박기옥 수필가
이근자 소설가

글을 읽으며 무척 감동스러웠다. 냉정하게 보기 위해 이유를 찾아야 했다. 우선 실제 이야기라는 전제에 감정이입이 잘 되었고, 글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이야기를 전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 사람이 65년 넘게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는가. 정성스럽게 정제하고 절제된 이야기는 그렇게나 힘이 있었다.

본심작 중, 파독 간호사로의 역경기를 그려준 '삶의 수레바퀴', 아틀란타 올림픽 성화봉송 체험기를 그려준 '무상 속에 걸어온 길' 등은 읽는 이의 가슴을 절로 저리게 한다. 고개가 수그려짐 역시 당연하다.

삶의 어느 한순간을 스쳐지나갔던 상처, 오롯이 자신만의 것인 그 상처를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고즈넉히 돌아보는 작품은 일견 상대적으로 '작은' 회고로 보인다. 그러나 상처에 크고 작음이 어디 있으랴. 그저 가슴 속에 묻고 가도 되었을 어린 시절의 상처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승화한 작품 '그날'은 그래서 눈에 띄었다.

논픽션 응모작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 '그날'이었다. 엄마가 신열이 나는 동생을 업혀주며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었던 나는 동생을 업고 공터로 간다. 노는 동안 등에 업힌 아이가 까무러쳤다. 의사도 홍역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 동생을 죽게 한 죄책감과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프고 잠이 쏟아지는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그날의 아픔을 따라가는 12살의 심리적 추이와 결 고운 죄책감이 잘 표현된 수작이다.

한국전쟁이나 처첩의 갈등 같은 소재는 지난 이야기라 식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쟁의 아픔」을 읽으며, 역시 글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은 글인지 아닌지 결정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수필 심사평…나의 이야기를 우리 이야기로

주인석 수필가
박기옥 수필가
문무학 시인
주인석 수필가

올해도 수필부문은 응모작이 530편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수필을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하여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작품'으로 볼 때 쓰고자 하는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 유지가 되지 않은 작품들이 눈에 띄어 아쉬웠다. 작가 스스로 대상에 함몰되어 자기 슬픔이나 비탄에 치우침으로 독자의 감성에 이르지 못한 작품들이었다.

「오백원」은 지하철 출입구에서 행인들에게 500원을 구걸하는 여인을 소재로 쓴 글이다. 시선이 밝고 따뜻하다. 일흔을 조금 넘긴듯한 여자가 500원을 외치는 목소리는 사십대라 할 정도로 맑고 또랑또랑하다. 작가는 그녀를 소싯적에 잘 나가던 가수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평생 빚에 허덕이던 도스토옙스키의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명언을 떠올린다. 심지어는 '오백원'하는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에서 동전에 새겨진 학이 날아오르는 환영을 보기도 한다. 다소 작위적인 부분은 거슬렸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수필이었다.

「몽동발이」는 박물관 앞에 서 있는 석회목을 주목한 작품이다. 초록의 나무가 생목의 누를 벗고 몽동발이로 되는 과정을 통해 은퇴를 앞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문장력이 탁월하고 삶을 잘 형상화한, 사유가 깊은 수필이다.

「노인이 깡패다」는 필체가 경쾌하다. 낙엽이 힘없이 나뒹구는 어느 늦가을, 작가는 단골 식당에서 두 노인을 만난다. 소주와 삼겹살을 시킨 두 노인은 작가를 향하여 "저 때는 모든 것이 힘들거든. 늘 걱정하고 일만 하잖아. 우린 지금 겁날 게 없어. 어설픈 낙엽보다 적당한 때에 떨어지면 되지 뭐." 일갈한다.작가는 그들에게서 삶에 대한 신념과 당당함을 본다. 삶에서 맞닥뜨린 모든 것을 평정하고 당당하게 종착점을 향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깡패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독성이 좋은 글이다.

「아까시나무」는 감성적인 작품이다. 북아메리카에서 자라던 외래식물로 6.25전쟁 후 폐허가 된 산에 심었던 아까시나무를 불륜으로 태어난 어린 소녀에 접목시켰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이야기를 무리 없이 풀어가는 솜씨가 감동적이었다.

「고향의 무지개」는 백두산 줄기의 깊은 산골에 사는 해외 동포의 이야기다. 1988년, 삼십여호의 독립군 후예들이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동네에 서울올림픽 소식이 날아든다. 고국을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된다. 화전을 일구어 사는 실향민들이 감자를 캐고 버섯을 따서 중국돈 이천여원을 모아 고국으로 보낸다. 고국에서 올림픽 초청장과 항공권이 도착한다. 진솔한 표현과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주최 측에서 기대한 <시니어 문학>의 진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시 심사평…원숙함과 깊은 내공 표현

류인서 시인
문무학 시인
류인서 시인

'시니어' 는 나이듦의 의미만이 아닌 원숙함과 깊은 내공의 다른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이 현상은 9회째인 매일시니어문학상 공모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 앞에 놓인 시. 시조 부문 790편의 응모작들이 이 긍정적인 믿음 안에 있었다.

여러 편의 후보작을 뽑고 논의를 거쳐 <피아노 치는 손>, <어스름 그 골목 들어서면>, <줄장미>, <대머리 족보>, <아이는 기다리지 않고 어른이 된다 >, 5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피아노 치는 손>은 현실과 미학의 조화에 성공한 시다. 현실과 이상의 계면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의 자의식과 쓸쓸함이 엄살 없이 담담하고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음이 돋보였다. <어스름 골목에 들어서면>은 삶의 현장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얻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시가 우리 삶에 스며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머리 족보>는 한편의 이야기 시다. 눈앞의 삶을 기어이 살아내고 있는 이 가계의 서사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눈물겨움이다. <아이는 기다리지 않고 어른이 된다> 는 일상이 된 걷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엄마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잔잔하게 풀어놓았다. <줄장미>는 시조로 보조관념과 원관념 사이의 낙차를 가늠하기도 전에 입술에 붙어 줄줄줄 의미의 겹과 층을 더해간다. '줄줄줄' 이라는 부사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중간에서 양쪽으로 팔을 걸치고 있다. 당선자들께는 축하의 박수를, 응모자들께는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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