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새벽 3시 30분, 한산도 의료봉사를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달 전부터 교회에서 계획하고 준비한 의료봉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기에,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3시부터 의료봉사에 필요한 물품들, 약들, 치과 기구, 한방 기구, 물리 치료 기구를 버스에 실었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및 이미용사들 약 30여 명이 함께 팀을 이루어 떠나는 봉사였다.
부지런히 달려 6시쯤에 통영에 도착하였다. 다시 배를 타고 한산도에 도착하니, 7시가 약간 넘는 시간이었다. 한산도는 경상남도 통영시에 속한 섬으로 그 유명한 한산도 대첩의 주 무대가 되는 섬이며,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한산도는 노인인구가 많은 섬으로, 2020년 기준 약 2천 명이 살고 있었으나, 코로나 이후 많은 분들이 돌아가셔서 현재는 약 1천5백 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준비를 마치고, 8시부터 본격적인 진료 및 이미용 봉사가 시작되었다. 진료를 해보니, 예상과는 달리 내과, 신경과, 치과보다는 성형외과, 한방 진료의 인기가 많았다. 성형외과는 레이저치료기를 가지고 갔는데, 어른들의 점이나 검버섯 제거를 주로 하셨고, 한방 진료는 어른들의 관절통, 근육통에 침 치료를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누군가 한산도에 아이들이 10명 이내로 있다는 언질을 주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료 도구며 약들을 챙겨갔는데...... 진료 시간 내내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의료봉사 계획을 세울 때, 소아청소년과는 진료과목에 없었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 소아과의사가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료봉사를 하고 싶었던 나는, 아이가 없으면 약사님을 도와 약국 일을 거들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의료봉사를 가보면, 여러 과에서 쏟아지는 처방전을 약사님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음을 비웠지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오겠지?'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한산도에 도착해서 면사무소로 이동할 때까지 동네에 아이들 한 명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출산. 2023년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다. 저출산이란 말이 등장하면서, 정부는 저출산 대책 및 정책을 매년 내놓고 있지만, 저출산의 속도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을 내달리는 자동차처럼 말이다. 출생자수는 1996년 70만 명 아래로 떨어진 이후, 2001년 50만 명, 2017년 40만 명, 2020명 3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유일한 국가이다. 합계 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지면 현재 인구를 유지할 수 없으며, 1.3명부터는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미 마지노선을 지난 셈이다.
가깝게는 유치원과 학교가 줄어들고 있다.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인구가 줄어들고 그 지역의 소멸 위기와 연결되는 것이다. 교대의 인기가 떨어지고,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의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 정부는 임신 준비 부부 지원, 아동의료강화(24개월 미만 입원 진료비 무료), 주거부담 완화, 양육 부담 경감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는 저출산의 문제가 집값, 취업, 복지 정책, 사회 인식 등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저출산대책은 다자녀(2명 이상) 가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 자녀 가정도 다자녀 가정 못지않게 재원과 편의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료실에서 엄마들 하고 얘기를 해 보면,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힘들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재정의 지원이든, 인력의 지원이든 간에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아이 한 명 키우는 것이 해 볼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둘째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정부나 학계에서 많이 고민들 하겠지만 말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영혼은 아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치유된다" 학교를 마치고 과를 선택할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소아과를 지원한 데는 비록 병원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였다.
'아름다운 남해의 섬 한산도에 사랑스런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더욱 많아졌으면'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길었던 하루를 마친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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