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의 음악대학 교수가 된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 교수가 절망과 아픔,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고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 '휠체어는 나의 날개'라는 제목의 특별 강연했다.
차 교수는 3일 (사)여중군자장계향선양회 안동지회 초청으로 안동시민회관 대동관 낙동홀에서 아픔과 절망속에서 삶을 지탱해준 바이올린과 음악 등 자신의 삶에 대해 강연했다.
이날 강연에는 김미자 장계향선양회 안동지회장을 비롯해 안동지역 유림어르신, 지역 사회단체, 공무원, 장애인단체 등 500여 명이 몰려 차 교수의 삶과 희망의 메시지에 감동을 받았다.
이날 차인홍 교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자신의 절망적 상황과 가난한 집안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9살에 재활원에 보내지고, 그 곳에서 운명적으로 바이올린을 접했던 때의 환의를 담담하게 말했다.
이후 베데스다 4중주단으로서의 활동, 인생의 동반자 아내와의 만남, 미국 유학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장애인 장학재단'에 대한 비전까지 그가 걸어온 다양한 삶과 앞으로 펼쳐갈 비전과 희망을 진솔하게 전했다.
차인홍 교수는 절망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산 사람이다. 소아마비로 두 살 때부터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서 생활했으며, 집안 사정도 어려워 아홉 살 때는 재활원에 맡겨져 성장했다.
장애인인 데다가 정규 학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그는 스물네 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검정고시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당시로서는 능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도 유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의 축복을 통해 유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시내티 대학, 뉴욕 시립대학,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고 우리나라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음악대학의 교수가 됐다.
이런 극적인 변신 뒤에는 연탄광에서 하루 10~15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에 몰입했던 고통의 시간들과 졸린 눈을 비벼가며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위해 이를 악물었던 눈물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희망에 대한 끝없는 갈구가 밑바탕이 됐다.
김미자 장계향선양회 안동지회장은 "오늘 장애를 딛고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위대한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는 세계적 인물 차인홍 교수의 강연을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기쁜 마음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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