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30년 땜질 수능 한계에 봉착, 자격고사화하자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세부 계획이 공개됐다. 11월 16일 시험일까지 불과 넉 달여를 앞두고, 온 나라가 들썩일 만큼 불안과 혼란 속에 빠져 있다. 바로 수능 난이도의 향방 때문이다. 교육 사안에 대해서는 폭발력이 강한 '교육의 나라' 대한민국의 실상을 보여준다.

지난 6월 모의평가 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어 영역 독서 부문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비판하면서 9월 모의평가는 물론 올해 수능에서 공교육 교과과정 밖에서 복잡하게 출제되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공정 수능' 가이드라인이다.

이후 6월 모의평가에서 공교육 밖 출제 배제 지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과 출제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장이 경질됐다. 아울러 킬러 문항이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과 결부되어 있다고 보면서 대형 입시학원에 대한 세무조사와 신고센터를 설치해 사법 처리도 예고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도 한국의 수능 '킬러 문항' 논란과 관련해 사교육 과열로 인한 부작용을 조명했다. CNN은 "한국에서 부모의 목표는 자녀가 18세가 돼 수능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하고 명문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어 고유명사인 '학원'을 그대로 표기하며 "학생들은 정규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바로 학원(Hagwon)으로 이동하고 새벽까지도 자습을 이어간다"고 전했다. 교육 불평등부터 청소년의 정신 질환, 심지어는 출산 기피 문제까지 초래하기에 한국 정부가 수능에서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 같은 사교육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고 CNN은 보도했다.

초·중·고 사교육비가 지난해 26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현실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거나 수능 난도를 낮춘다고 사교육이 수그러들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는 것이 또 다른 '준킬러' 문항이 늘어난다는 뜻인지, 쉬운 수능이 되면 변별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교육부는 "출제 기법을 고도화한다"는 방침 외에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입시 준비는 공교육만으로 충분해야 한다는 것에 다툼의 여지가 없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고교학점제 등 학생의 성장과 맞춤형 교육에 주안점을 둔 만큼 이를 담아내는 새로운 평가 틀이 필요하다. 이름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修學)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수능이 지난 30년 동안 수시로 땜질식 처방을 거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 문제를 배배 꼬거나 덜 꼬아서 시험 난이도를 유지하는 수단은 학생들에게 못할 짓이다.

물론 수능 점수로 대학 가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서열화된 결과로만 평가한다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미래 AI시대에 필요한 창의 인재 양성을 위해 현재 수시 제도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지만 정시만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서울대 정시 합격자 수를 보더라도 차이가 자명하다. 대구경북 안에서도 학교별 분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능 만능이 되면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힘들고, 지역 간 입시 격차는 더욱 심해지며, 공교육은 황폐화되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능은 한계에 봉착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본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에 충실하게 출제하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잘 볼 수 있는 수준이면 된다. 대학 갈 자격을 부여하는 자격고사로 활용하는 것이 수능의 목적에 부합한다. 그러면서 대학엔 교육목표와 방향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자율적 권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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