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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08>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년과 누렁소

미술사 연구자

김기창(1913-2001),
김기창(1913-2001), '목동', 1958년(46세), 종이에 담채, 21×44㎝, 한빛문화재단 소장

잔등에 소년을 태운 누렁소 두 마리가 솔숲을 지나는 광경을 스케치 풍으로 시원시원하게 그렸다. 일필휘지의 속도감 있는 즉흥적 필치에서 김기창의 거장다운 실력이 슬쩍 드러난 작품이다. 소년은 긴 대나무 가지로 소에게 방향을 일러주며 집으로 향한다.

풀이 많은 산기슭으로 소를 몰고 나가 신선한 꼴을 먹여 키우는 일은 남자아이들 몫이었다. 개구쟁이 소년은 자라서 가장이 될 테고, 송아지 때부터 몰고 다니며 튼실하게 키운 이 소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농경사회의 어떤 향수어린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김기창의 '목동'이 그려진 1950년대는 물론 20세기 후반까지도 소치는 소년인 목동(牧童)과 소는 시골 고향이 그리워지는 정겨운 장면이어서 동양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목동은 우리나라 풍속화의 시조인 문인화가 윤두서의 실경산수 '경답목우도'에서부터 나온다. 윤두서를 이어 풍속화의 세계를 만개시킨 김두량, 김홍도, 김득신 등 화원화가들도 소년과 소를 즐겨 그렸다. 풀을 뜯고 있는 소 곁에서 느긋하게 누워 낮잠을 자거나, 이 '목동'처럼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목동은 조선시대부터 그려진 유서 깊은 주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김기창이지만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았다. 김기창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장티푸스를 앓아 청각장애인이 된 김기창에게 화가의 길을 열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김기창의 어머니 한윤명(1895-1932)은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한때 여학교 교사를 지냈다.

김기창이 '예수의 생애'(1954)를 29점으로 연작한 성화(聖畵)를 그리게 된 것은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었으리라. 한복 입고 갓 쓴 예수의 모습, 치마저고리 입고 물레를 돌리는 마리아, 날개옷 입은 선녀로 그린 천사 등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일생을 한국적인 상황으로 번안해서 그린 인상적인 역작이다.

'목동'은 왼쪽 여백에 "봉재선생(鳳齋先生) 청상(淸賞) 무술(戊戌) 초복(初伏)"으로 써넣어 그가 46세 때인 1958년 여름 초복날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운보(雲甫)' 서명과 인장 '김기창인(金基昶印)'은 화면 오른쪽 소나무 사이에 있다.

김기창의 처음 호 '운포(雲圃)'는 그의 그림 재주를 알아보았던 어머니가 지어줬다. 김기창은 이 호를 사용하다 광복을 맞이하게 되자 기쁜 마음에서 운포의 '밭 포(圃)'에서 굴레를 벗겨내 '클 보(甫)'로 바꿔 운보라고 했다. 널리 알려진 김기창의 호 '운보'는 어머니와 그의 합작인 셈이다. 내일이 초복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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