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미녀는 왜 석류를 좋아할까’ 석류나무

겹꽃잎의 석류나무인
겹꽃잎의 석류나무인 '백엽류'(百葉榴)는 열매를 맺지 않아 주로 꽃을 보는 관상수로 심는다.

짙은 초록 가지에 붉은 점 하나

(濃綠萬枝紅一點·농록만지홍일점)

사람 감동시키는 봄의 경치 많을 필요 없어라

(動人春色不須多·동인춘색불수다)

중국 송나라 때 문장가이자 개혁가인 왕안석(王安石)은 「영석류시」(詠石榴詩)에서 아름답게 핀 선홍색 석류꽃의 강렬한 인상을 '홍일점'(紅一點)이라고 읊었다. '많은 남자들 틈에 있는 오직 하나뿐인 여자'라는 풀이 외에도 오늘날에는 '여럿 속에서 이채(異彩)를 띠는 오직 하나'를 비유할 때도 쓰는 말이다. 봄에 가장 늦게 새 잎을 내미는 게으른 나무 축에 드는 석류나무는 초여름 신록이 무성한 가지에 붉은 석류꽃이 하나씩 불타듯 핀다. 석류꽃이 피는 음력 5월은 석류달[榴月]이라 부른다.

◆안석국 신기한 과일나무

석류의 이름은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 무제의 명을 받고 서역에 파견되었던 장건(張騫)이 돌아올 때 안석국(安石國)에서 처음 가져왔기 때문에 안석류(安石榴)로 불렸다가 뒷날 줄어서 석류(石榴)가 됐다. 안석국은 고대 파르티아 왕국으로 지금의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 서기 226년까지 존립했던 나라다.

석류나무의 암꽃(왼쪽)과 수꽃. 암꽃은 왕관 같은 꽃받침이 뚜렷하다.
석류나무의 암꽃(왼쪽)과 수꽃. 암꽃은 왕관 같은 꽃받침이 뚜렷하다.

석류나무는 아름다운 꽃과 독특한 모양의 열매 때문에 수많은 시가(詩歌)의 소재가 됐다. 고려에서는 자기(磁器)의 문양으로도 쓰였고 『고려사』에 의종 5년(1151년)에는 기록으로도 확인됐다.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석류 문양의 일부가 들어 있는 당초문(唐草紋)이 유행한 것으로 볼 때 7세기 이전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류나무는 석류나뭇과의 낙엽활엽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높이가 7m 정도까지 자란다고 하지만 보통 2~4m 정도다. 나뭇잎이 긴 타원형으로 마주나고 가지 끝에서는 모여 난다. 꽃은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6월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진다. 붉은 꽃잎은 5~7갈래의 꽃받침 안에 여섯 장 꽃잎이 겹쳐서 핀다.

가을에 익은 열매의 크기가 어른 주먹 정도로 굵고 끝에 꽃받침 조각이 붙어 있는 작은 달항아리나 호리병 모양이며 황갈색 껍질은 붉은빛을 띤다. 열매 속은 얇고 반투명한 호주머니 형태의 여러 방으로 나뉘어 있는데, 방마다 작은 유리 구슬 같은 투명한 씨앗을 알알이 품고 있다. 중국 남부에는 석류의 씨가 미인의 가지런하고 흰 치아와 닮았다고 해서 이가 곱고 입술이 아리따운 미인을 '석류교'(石榴嬌)라 불렀다.

◆부귀의 상징, 석류꽃

부귀와 완숙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석류꽃과 다산을 상징하는 열매가 모두 완상할 높은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옛사람들의 집 안마당 한쪽에 석류나무가 서 있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강희안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의 「화목구품」에는 석류가 3품으로 세 번째 등급에 들어 있다. 유박이 지은 『화암수록』의 「화목구등품제」에는 해류(海榴)가 2등, 석류가 5등에 있고, 「화목28우」에서는 해류를 '다정한 친구'라는 의미의 정우(情友), 석류를 '아름다운 친구'라는 의미로 교우(嬌友)라 했다.

또 「화품평론」에 해류를 "중국 월나라 미인 서시에 비유하며 이마를 찡그리자 사람들의 애간장이 끊어진다"고 평했고, "석류는 당나라 현종의 비(妃)인 양귀비에 비유하여 그 총애가 육궁을 위태롭게 한다"고 했다. 여기서 해류의 종류는 백엽류(百葉榴), 화석류(花石榴), 홍화백록(紅花白綠)으로 분류됐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설명을 보면 꽃석류로 미뤄 짐작된다.

도심 주택 뜰에 심어진 석류나무.
도심 주택 뜰에 심어진 석류나무.

◆중국 석류는 '기승전양귀비'

중국에서 석류와 관련된 전설이나 설화는 대부분 '기승전양귀비'로 이어진다.

당나라 현종이 어느 날 신하를 초청해 잔치를 열고 애첩인 양귀비에게 춤을 추어 흥을 돋우라고 했다. 양귀비는 신하들이 예를 다하지 않으니 춤을 추고 싶지 않다고 현종에게 속삭였다. 자신이 총애하는 양귀비가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현종이 신하들에게 앞으로 양귀비를 보면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하라고 명했다. 이후 신하들이 양귀비가 입은 붉은색 석류 치마만 보면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대표작 「비파행」에 나오는 '붉은 치마 입은 여인이 너무 아름다워 술잔을 엎었다'(血色羅裙飜酒汚·혈색나군번주오)는 구절을 각색한 이야기다.

또 석류가 익을 무렵 양귀비가 아예 석류나무 숲에서 살다시피 하자 당 현종은 그녀를 위해 화청궁에 석류 숲을 만들었다. 석류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함께 꽃구경을 했고, 술 취한 양귀비가 미간을 찌푸리면 술 깨라며 현종은 직접 석류를 까서 빨간 알갱이를 그녀의 입속에 넣어주었다고 전한다.

나무라면 흙에 안착해야 무성할 수 있기에

(例憑土肉得繁枝·예빙토륙득번지)

온갖 꽃들의 한들거리는 모양 보기도 지겨운데

(厭見群紅婀娜姿·염견군홍아나자)

여러 꽃 중 오직 안석류에 의지하여

(賴爾花中獨安石·뇌이화중독안석)

나와 같은 철심장도 오히려 미간을 펴게 되네

(鐵腸如我尙開眉·철장여아상개미)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는 「석류화」(石榴花)라는 시에서 철심장을 가진 사람도 석류꽃 앞에서는 미소를 짓게 된다고 칭송했다.

9월에 석류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9월에 석류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페르세포네의 공통점

석류는 꽃을 즐기는 원예식물인 동시에 먹는 과일을 얻는 과수(果樹)이다. 가을에 껍질이 툭 터진 석류 씨알들을 입에 가득 넣고 깨물 때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은 쉽게 잊을 수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오래전에 유럽이나 이집트로 건너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석류 그림이 새겨져 있다.

한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한다'는 광고가 국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녀는 진짜 석류를 좋아할까? 석류를 먹으면 정말 예뻐질까? 한 번쯤 가질 만한 의구심이다. 요즘 유행하는 '팩트 체크'를 해보면 일단 미녀가 석류를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역사상 석류를 좋아했던 경국지색의 미인으로 동양엔 양귀비, 서양엔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신화에서는 페르세포네 여신을 꼽을 수 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석류를 매우 좋아해 매일 석류즙을 마셨고 석류 씨앗으로는 립스틱을 만들어 발랐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콧대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파스칼의 말뜻은 미모(콧대)에 방점을 두는 게 아니라 인간의 헛됨이나 무모한 욕망을 지적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기원전 1세기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클레오파트라의 미모 유지 비결이 석류라는 이야기에 더 관심과 흥미를 가진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 페르세포네 이야기에도 석류는 빠지지 않는다.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는 꽃밭을 거닐다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 세계로 끌려갔다. 어머니의 강력한 요구로 딸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지만, 하데스가 건넨 석류 3개를 먹는 바람에 지하 세계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1년 중 석 달은 땅 밑 세계에서 하데스의 아내로 지내게 된다. 신화 속 석류에는 치명적인 유혹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잘 익은 석류의 껍질이 벌어져 붉게 투명한 씨들이 탐스럽다.
잘 익은 석류의 껍질이 벌어져 붉게 투명한 씨들이 탐스럽다.

◆종교에 투영된 석류

석류는 신화와 역사 속에서뿐만 아니라 종교 경전에도 나온다.

기독교 『성경』에서는 석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서 자라는 과일이다. 특히 구약성경 「탈출기」 28장에는 최초의 사제가 된 모세의 형 아론이 입을 사제복 겉옷에 석류 장식을 만들어 달도록 했다.

불교에서 아기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귀자모신(鬼子母神) 이야기에도 석류가 등장한다.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사는 마귀 야차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외모로 남자를 유혹해 잡아먹는다. 가장 유명한 야차인 귀자모신은 사랑하는 자식이 1천 명이나 있었다. 제 자식은 끔찍이 아끼면서 사람의 자녀를 보기만 하면 잡아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엄마들이 석가모니에게 귀자모신의 못된 버릇을 고쳐줄 것을 간청하자 석가모니는 마귀의 막내 빈가라(嬪伽羅)를 숨겨 버렸다.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이 무엇인지 그제야 알게 된 마귀가 참회하자 석가모니는 아이 대신 석류를 먹게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귀자모신은 불교에 귀의한 뒤 해산(解産)과 육아를 맡아보는 신이 됐다.

석류는 감귤의 한 종류인 불수감(佛手柑), 복숭아와 함께 3개의 보물, 즉 삼보(三寶) 과일이다. 인간이 간절하게 염원하는 다복(多福), 장수(長壽), 다산(多産)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열매 속에 수많은 씨앗을 품고 있어 다산을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손 번성의 상징처럼 여기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불교 관련 문양에 석류가 들어가는 이유다.

석류나무 겹꽃
석류나무 겹꽃

◆다산의 상징

붉은색이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온 민간신앙에서는 석류도 재액(災厄)을 막아주는 과일로 취급했다. 빨간 꽃에 붉게 익는 열매, 수많은 씨알들도 모두 홍색을 띠는 석류나무 한 그루를 장독대 옆에 심으면 나쁜 기운이 범접을 못 해 장맛이 좋아진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석류나무 열매가 익어 가는 과정을 아이가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음낭의 변화와 모양이 닮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석류가 가진 다산의 의미에 음양의 상징성이 더해져 옛 여인들의 물품에 쓰였다. 조선시대 귀부인들의 예복인 당의(唐衣), 왕비의 대례복, 골무, 안방 가구 등에 석류 문양이 들어갔다. 비녀 머리에 석류꽃 모양을 새긴 석류잠(石榴簪), 귀부인들이 차고 다니던 석류 모양의 향낭 등에도 부귀와 공명과 다산의 뜻을 담았다.

중국에서는 이미 5, 6세기 무렵에 자손 번영의 상징으로 왕족의 결혼식에 석류 열매를 바쳤다. 튀르키예에서는 갓 결혼한 신부가 익은 석류를 땅에 던져서 쏟아지는 씨의 수만큼 자식을 낳는다고 믿는 풍속도 있다.

시골 안마당, 장독대 옆, 뜰에는 석류나무에 붉은 꽃이 활짝 피고 푸른 석류가 알알이 영글어 가지만 아이 소리는 오래전에 끊겼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도 1 이하로 떨어졌으니 지방 소멸을 대비해야 할 판이다. 석류꽃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다.

선임기자 chunghama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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