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종종 '만다라트'라는 그림을 이용한 과제를 내곤 한다. 만다라트(madalart)는 불교 용어인 만다라(madala)와 기술을 의미하는 아트(art)가 합쳐진 말로, 한가운데 자신의 관심사나 목표 등을 써 놓고, 그와 관련된 지식들 혹은 목표 달성에 필요한 계획들을 꽃잎 모양으로 펼쳐진 네모 칸에 채워 넣는 방식으로 주로 활용된다.
만다라트가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29)의 역할이 크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 투수이자 타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도 꽤 많은 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검색을 해 보면 고등학교 때 그가 수기로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8구단 드래프트 1순위'가 목표였던 그는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털, 스피드(160㎞/h), 인간성, 운, 변화구'라는 여덟 영역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을 그의 만다라트에 상세하게 적었다. 예를 들면, '제구'라는 영역에서는 '인스텝 개선, 몸통 강화, 축 흔들지 않기, 몸을 열지 않기, 릴리즈 포인트 안정' 등을 써 놓았다.
내가 그의 만다라트에서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운'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운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하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신화에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알려진 포르투나(Fortuna) 여신을 그린 중세 시대 판화를 보면, 어디로 구를지 알 수 없는 둥근 공 위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눈을 가린 채 아무에게나 행운의 금화를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행운(혹은 운명)이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으며, 예기치 않은 형태로 우연히 찾아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는 '운' 또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관리해야 할 세부 영역으로 설정하고,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부실(部室) 청소, 물건 소중히 쓰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긍정적 사고' 등을 그 실천 항목으로 써 놓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된 후에도 여전히 마운드에서 쓰레기를 보면 되돌아가 줍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운'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일까? 오래전 이야기다. 내가 아는 한 대학생은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인상이 좋은 그는 아마 성실하게 일을 했을 것이고, 주유하러 오는 차주들에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도 곧잘 했을 것이다. 몇 번을 이 주유소에서 주유했던 한 차주가 어느 날 갑자기 차에서 내리더니, 자신은 약사인데 여기 아르바이트 말고 자신의 약국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즉석에서 제안을 했다. 물론 여러 조건이 훨씬 좋았으니, 요즘 말로 하면 '꿀알바'에 해당하는 것이다. '운'이라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내 삶의 손바닥 안에서 내가 조금은 어찌해 볼 수 있는 범주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타니 쇼헤이는 그의 저서에서 쓰레기를 줍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겁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아름다운 말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 대한 어떠한 작은 비난의 마음도 없으며, 쓰레기를 줍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어떠한 작은 과시욕조차 없다. 설령 포르투나 여신이 발 밑의 둥근 공을 자신의 의도대로 굴릴 수 있게 되어 그에게 행운의 금화를 뿌린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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