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가득 덮인 설산(雪山)의 풍경이 전시장을 채웠다. 설산인 듯 아닌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림 표면은 온통 거칠고 퍼석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포근하고 깊이가 느껴진다. 물감을 긁어낸 틈새로 엿보이는 수 겹의 물감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6일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만난 황옥희 작가는 "아크릴 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나이프 등으로 긁어낸 뒤 다시 물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최소 6번 반복한다. 긁어낸 틈 사이로 아래층의 색감이 배어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온갖 스크래치를 고스란히 안은 채 겹겹이 올려진 물감은 굴곡이 쌓여 만들어진 삶과도 같다. 어두운 색의 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던 노란색, 초록색이 어쩌다 드러나면 마치 밝고 맑았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그의 전시 제목이 'In my time'인 것도, 또 산을 그린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산에는 오랜 시간 낙엽과 꽃 등 수많은 것들이 쌓여왔습니다. 사실 산은 표현의 수단이고, 제가 그리고자 한 건 시간의 흔적, 기억들이었습니다. 결국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내 정체성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번 전시는 황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그는 "열심히 해온 작업들을 내어보이는 건 언제나 떨린다"며 "오랜만에 작품을 제대로 선보이는 기회여서 설레는 한편으로 많이 긴장도 된다"고 말했다.
5년 새 화면 구성은 좀 더 해체되고, 형태가 풀어진 모습이다. 구태여 형체를 나타내려고 집착하고 싶지 않았고 메시지 위주로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덜어내고 비워내는 게 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했다.
전시장에서는 150호, 100호 등 대형 작품 26점을 비롯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푸른빛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관람객들이 단순히 설산을 그렸구나 에서 나아가 겹겹이 숨어있는 색도 발견하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공감해줬으면 합니다. 또한 작품을 통해 각자 지나온 삶의 기억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편 황 작가는 2016년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최우수상에 이어 2017년 동 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이어진다. 053-420-8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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