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에서 양평 고속도로로' 뉴스의 전환이 너무 빠르다. 야당이 새 이슈를 던진 탓이다. 뉴스 다루기를 업으로 해온 필자에겐 이런 기민이 수상쩍기만 하다. 혼전 중 택할 수 있는 36계에 '혼수모어'(混水摸魚)가 있다. 물을 휘저어 탁하게 만든 뒤 고기 낚는 기회를 잡아 보라는 계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건방을 떤 싱하이밍 중국 대사를 위안스카이로 비판한 내공이 있다. 그전에는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에, '힘으로 현상 변경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야당이 후쿠시마 분탕을 칠 땐 '반국가단체'를 거론했다. 36계의 공격 전술 가운데 '타초경사'(打草驚蛇)가 있다. 풀을 때려 숨어 있는 뱀을 놀라게 하라는 것이다. 간단한 도발로 상대의 본색을 드러나게 하거나 겁먹게 하라는 전술이다.
야당이 혼수모어를 택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타초경사는 성공이다. 그런데 승리는 상황에 맞는 전술의 선택보다는 그 전술을 현실화하는 내공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조용히 있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갑자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덕분에 '윤석열 당선의 일등 공신'이란 평가를 받은 '추윤(秋尹) 배틀'이 떠올랐다.
당시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검찰총장이랍시고"라고 해, '랍시고'란 어록을 만들 정도로 매섭게 공격했다. 윤 총장은 방패만 들 수밖에 없었는데, 밀리지 않았다.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다. '양패구상'(兩敗俱傷)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토끼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냥개가 추적했는데, 잡지 못했다. 그런데 모두 지쳐 쓰러졌기에 늙은 농부가 다 잡아갔다. 비슷한 고사에 '어부지리'(漁夫之利)가 있다.
윤 총장 징계 서류를 재가한 문 대통령이 '국민적 밉상'이 된 추 장관도 버리는 양패구상을 택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된 추 장관은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을 읊조리며 분노했으나, 칼자루를 쥔 이는 문 대통령이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징계할 때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란 이육사의 '절정'을 인용했었다. 추운 겨울에 빗댄 것은 '내공에서 밀린다'는 자인(自認)이라는 걸 그는 알았을까.
양평 고속도로 공격에 이재명 대표를 움직일 수 있는 이해찬 전 대표가 나섰다. 이는 후쿠시마 공격이 동력을 잃었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정쟁은 추윤 배틀의 재판이다. 대장동 게이트 '일타강사' 칭호를 받은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전면 백지화로 응수했다. '좌(左)동훈'에 이어 '우(右)희룡' 조짐을 보인 것인데, 여당이 원 장관의 결정을 뒤집었다.
양평은 서울 부자들의 별장지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내놓은 별장이 1만 채나 된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시들하다. 그곳 선거는 늘 엎치락뒤치락하니 어느 당이 집권하든 부동산 경기는 살려야 한다. 이를 이유로 여당의 주류는 원 장관이 스타가 되는 것을 견제하기로 한 것 같다. 집권당이 내분 조짐을 보인 것인데, 이를 곤란해할지 꽃놀이패로 사용할지는 용산의 내공에 의해 결정된다. 용산은 내년 총선 이후의 여당 통제도 생각해야 한다.
잘하는 대통령은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법제화할 수 있어야 한다. 레이건은 여소야대에서 미국 대통령이 됐지만 그가 바라는 대로 입법화에 성공했다. 야당 대표인 하원 의장의 생일잔치를 백악관에서 열어줄 정도로 대화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게선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자세히 보면 '도긴개긴'이다. 이재명 대표는 귀국한 이낙연 전 대표와 만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윤이(尹李) 배틀'은 추윤 배틀의 재연일 수 있다.
역술가 최용권 씨는 '나용대검'(懶龍帶檢)으로 윤 대통령을 풀이했다. '게으른 용이 칼을 차고 있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에 '똑게'가 있다. 똑똑해서 다 알지만 지켜보기만 하는(게으른) 이가 좋은 리더라는 뜻이다. 기소를 앞둔 검사는 많은 검토를 하지만, 공소장을 낸 이후론 피고와 타협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언행에서 그런 모습이 발견된다.
올해 초만 해도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걱정하는 기사가 많았으나 지금은 보기 어려워졌다. 레이건과 다른 방법을 쓰고 있는데도 그가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무리한 도발은 민주당이 내공에서 밀린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제2의 추미애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하면 성급한 예단일까?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