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정희, 정상회담 압박 北에 '쇼 않겠다!' 의지 천명 확인

통일부 공개한 '남북회담 사료집'에서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듯 하라' 지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왼쪽) 1972년 5월29일 열린 서울회담에서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왼쪽) 1972년 5월29일 열린 서울회담에서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족상잔(한국전쟁)의 비극 이후 처음으로 성과를 낸 남북한 접촉과정에서 '쇼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정책의 방향을 두고 역대 정권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가 지난 6일 공개한 '남북회담 사료집'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72년 비밀리에 남북한이 7·4 남북공동성명을 준비할 때부터 우리 측에 남북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1972년 10월 12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에서 북측 공동위원장인 박성철 제2부수상은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김일성 동지께서는 몸소 이 부장선생을 접견하시는 자리에서 (중략) 박 대통령이나 이 부장선생과 합작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는 것을 뚜렷이 밝히셨다"고 말했다.

그 해 5월 이후락 부장이 비밀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부터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요구했다는 얘기다.

이 자리에서 이 부장은 "박성철 부수상께서 박 대통령을 만나셨을 때 박 대통령께서도 같은 뜻의 말씀을 하신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후락·김일성 면담에 이어 박정희·박성철 면담에서도 정상회담을 끈질기게 압박했다는 점을 짚은 발언이다.

이에 우리 측은 '처음부터 정상회담이 성사됐다가 잘못될 경우 실망이 클 수밖에 없고 어떻게 여건을 성숙시키느냐가 우선'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당시 중앙정보부 제9국장(북한국장)으로 남북접촉 실무전반을 이끌었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거부 언급 전후 맥락을 보다 자세히 설명했다.

강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난 박성철 전 부수상이 정상회담 필요성을 강조하자, 박 전 대통령은 지금 당장이라도 오늘 업무 후 평양까지 가서 아이들하고 같이 냉면 한 그릇 먹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인데 왜 내가 가고 오고 못 하겠느냐, 그러나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지 않으냐"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통령은 쉬운 문제부터 풀자고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선결과제로 제안했다.

이와 함께 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박성철과 면담한 후 우리(중정)한테 한 지시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듯이 하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치권에선 북한의 청와대 습격 직후로 지금보다 훨씬 엄혹한 시절이었음에도 남북교류의 실리부터 챙기겠다는 국정최고책임자의 고심이 엿보인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