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33> 음악의 셰익스피어- 오필리아의 류트(Lute)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서영처 교수 제공.

'햄릿'의 피리에 병치되는 악기가 오필리아의 류트다. 피리가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의 악기라면 류트는 아폴론적 상징성을 가진 질서의 악기다. 미친 체하는 햄릿과 미쳐버린 오필리아, 아버지를 죽인 자가 햄릿이라는 사실을 안 오필리아가 류트를 뜯으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부르는 노래는 분리된 양가적 감정이 충돌되어 나타난다.

실성한 여자가 든 꽃은 순결한 꽃이거나 오염된 창녀와 같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드러낸다. 오필리아는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는 감정들을 노래로 부른다. 니체에 의하면 내면의 상태는 말보다는 무한히 많은 멜로디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오필리아는 환상과 외설이 뒤섞인 노래를 부르며 광기를 발산하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죽는다. 순수한 만큼 파괴될 가능성이 많은 이 극의 가장 큰 희생자가 오필리아다. 이러한 오필리아의 노래 또한 류트 반주에 얹힌 디오니소스의 피리 가락이 되고 있는 셈이다.

'대위법'(Counterpoint)은 둘 이상의 독립적인 멜로디가 대립과 충돌, 병치와 결합을 통해 극적인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음악 기법을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음악적 구성은 매우 체계적이다. 그는 인물들의 역동성을 선율로 파악하고 작품 전체를 대위 구도로 구성하여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고뇌하는 햄릿과 매혹적인 오필리아, 피리와 류트, 햄릿의 충동과 지체, 이성과 광기 등의 이원성을 대립하고 통합한다. 햄릿과 오필리아는 이원성에 머무는 인물이 아니라 양자를 넘나든다.

셰익스피어는 복합적이고 모순에 찬 두 인물을 도덕과 대립되는 예술적 인물로 고안한다. 그는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햄릿과 오필리아를 피리와 류트에 대입하면서 두 인물의 고뇌와 불안, 자기 분열을 음악의 언어로 세밀하게 표현한다. 햄릿의 피리와 오필리아의 류트는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며 원초적 통일성이라 할 수 있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대위적 구성은 삶의 본질인 부조리와 모순을 음악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타나는 점(point) 대 점(point)의 대응은 존재를 의미화한다. 햄릿의 피리와 오필리아의 류트는 구체적인 소리로 나타나지 않지만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배음 역할을 충실히 한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객관성의 모사가 아닌 의지 그 자체의 모사라고 하였다. 음악의 상징성에 의해 햄릿과 오필리아는 다양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갖춘 르네상스적 인물로 탄생하고 작품에 새로운 가치를 덧입힌다.

오필리아의 낭만적인 비극은 후대의 수많은 시인, 화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랭보는 시를 쓰고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를 위시하여 외젠 들라크루아, 윌리엄 워터하우스, 살바도르 달리, 카바넬, 토마스 프란시스 딕시 등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최근에는 오필리아를 재해석한 영화도 나왔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오필리아는 죽지 않고 만인의 가슴에 아름다움과 비극의 화신으로 영원히 살아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