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솝우화 속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엔 시간제한이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실 수업은 40분이다. 이때 교사는 주어진 시간 안에 학생이 배워야 할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학습 자료와 방법을 적용하며 수업의 단계별로 활동에 필요한 예상 시간을 대략 정해 놓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모든 학생이 40분이라는 수업 시간 동안 배워야 할 학습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교사가 예상한 시간보다 학생들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원인은 교사와 학생의 측면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느림'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교사 입장에서 살펴보면 교사가 학생의 출발점 진단을 잘못한 경우, 학생에게 적절한 자료와 활동을 구성하지 못한 경우, 활동에 필요한 예상 시간 자체를 잘못 설정한 경우이다. 이럴 땐 오류를 짚어서 수업 내용에 대한 보충학습을 계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학생 측면에서 보자면, 학생들은 각자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원하는 것, 사고력 등 저마다 갖고 있는 능력이 모두 다르다. 이런 학생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완전학습의 방법은 없겠지만 학년 특성과 학급 학생들의 전체적인 특성을 고려해 수업 계획을 한다. 그런데 수업 활동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독 시간이 더디거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과목 또는 활동이거나 내용 자체를 이해 못해서 시간이 더 걸리고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도 있지만, 어떤 학생들은 반응의 속도나 활동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느린 경우가 있다. 수업의 활동이 모두 개별 활동이 아니라, 모둠이나 전체 활동인 경우 한 학생의 학습 속도가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선생님, 00이 때문에 아직 덜했어요"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기 싫어서 꾸물거리는 경우엔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타이르지만, 간혹 행동 패턴 자체가 느린 경우나 너무 꼼꼼하게 하고 싶거나 완벽하게 하고 싶은 학생들인 경우엔 달리 접근해야 한다.
◆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까
어른들이 '빨리빨리'가 잘하는 것이라고 인식해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 가끔 생각한다. 가령, 수학 문제도 빨리 푸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빨리 하는 것이 좋고, 부모나 선생님이 하라는 것을 서둘러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때로는 느림보 거북이처럼 한 발짝 한 발짝씩 차근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고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나가면서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어쩌면 빨리빨리 하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른으로서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안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부모나 교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에서 보면 빨리빨리 안 하는 아이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하는 모습에서조차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화를 내거나 그동안 믿고 기다려 준 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이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마음들이 과연 '교사나 부모를 위한 것인지, 아이를 위한 것인가?'이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를 가르치면서도 시행착오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어른이 정한 기준에 순응하며 시키는 대로 하길 바라는 마음, 내 아이는 무엇이든 최고로, 먼저이길 바라는 마음들이 꾸물거림이 있는 꼼꼼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못하고 문제아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공부든 무엇이든 간에 속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어른인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의 시기에 소위 '나머지 공부'라고 수업 마치고 바로 하교하지 못하고 선생님과 함께 남아서 보충 학습을 하며 때로는 꿀밤을 맞고 울면서 하교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생들에겐 나머지 공부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며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식들에겐 엄마가 나머지 공부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는 모습도 반성하게 된다.
삶을 전체로 바라봤을 때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아이들이 각자 목표를 향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나아갈 때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가장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믿음을 주며 기다리는 일이다. 이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느림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느림보 거북이가 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해 정상에 올라간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에 대한 끈기 있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묵묵히 걸어 정상에 도착했어요. 이때 토끼도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 벌써 거북이는 정상에 올라갔구나. 나도 이제 정상을 향해 달려가 볼까?" 토끼는 한숨 자고 난 개운함에 기지개를 크게 켜더니 힘을 내어 정상을 향해 달려갔답니다. 」
끝으로 토끼의 낮잠도 더 이상 실패가 아닌 도전하는 삶을 위한 '쉼'임을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실전달자(초등교사, 짱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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