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영아살해죄’라는 면죄부

11일 오후 전남 광양시 한 야산 자락에서 경찰이 지난 2017년 10월 생후 이틀 만에 암매장된 아기 시신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전남 광양시 한 야산 자락에서 경찰이 지난 2017년 10월 생후 이틀 만에 암매장된 아기 시신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과거 일본에는 '마비키'라는 풍습이 있었다. '솎아 내다'라는 뜻의 마비키는 마치 나무를 솎아 내듯 아이 수를 줄이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하는 야만적인 악습이었다. 젖을 주지 않아 굶겨 죽이기도 했고, 목을 졸라 질식사시키기도 했다.

아이를 죽인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어려운 형편에 입 하나라도 줄이겠다는 것, 또 가혹한 세금 탓에 인두세(人頭稅)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한 해에만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은 여자아이들이 희생됐다.

당시에는 7세 이하의 아이들을 '신의 아이'라고 하며, 이 같은 행위를 신에게 아이를 반환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영아 살해 풍습은 '신께 되돌려준다'는 뜻의 '코카에시'라고도 불렸다. 끔찍한 살인을 성스러운 행위로 포장하며 처벌은 물론 죄책감까지 덜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영아살해죄'라는 면죄부가 존재한다.

형법에서는 일반 살인죄와 달리 영아살해죄를 두고 살인보다 낮은 형량을 규정한다.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최소 5년에서 30년까지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영아살해죄의 형량은 하한선 없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돼 있다. 실제 처벌은 더욱 약하다. 영아살해범의 절반가량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나머지 절반은 3년 이하의 징역형에 그치고 있다.

법은 영아살해죄에 대해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라는 근거를 달았다. 즉,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살해한 경우 정상 참작을 해준다는 말이다. 아이를 죽인 부모는 다른 사람을 죽인 것만큼 처벌받지 않는 것은 물론, 법으로부터 '이해'까지 받게 되는 셈이다.

영아살해죄는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는 전통사회의 유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아살해죄가 1953년 형법 제정 때 도입됐고, 7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프랑스와 독일은 1990년대에 영아살해죄를 없애 살인죄와 동일하게 보고 있고, 미국은 물론 20세기까지도 마비키가 존재했던 일본도 영아살해죄를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현재 법 감정과 동떨어진 처벌로 영아 살해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영아살해죄 폐지' 주장이 나왔고, 국회에서는 수차례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그때뿐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영아살해죄를 폐지하고 살인죄와 같이 취급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2년이 넘도록 계류 중이다.

심지어 국민의힘은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한발 더 나간 공약을 내놓기도 했었다. '비속 살해'를 '존속 살해'처럼 가중처벌하겠다는 약속이다. 이와 관련된 법안들도 속속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최근 다시 영아살해죄 폐지 여론이 들끓고 있다. 2015년 이후 출산 사실은 확인됐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가 2천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수조사에 들어가자 살해된 사례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자 또다시 정치권에서는 "신속하게 법을 정비하겠다"며 외치고 있다.

처벌 강화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미혼모 지원, 부모 교육 등 비극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법이 아이를 살해한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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