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새벽에 불이 나서 대피해야 한다고 해서 내려왔는데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13일 오전 9시쯤, 대구시 달서구 감삼동의 한 재활병원 안. 이날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병원 1층 로비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휠체어를 탄 환자 100여 명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고. 병원 관계자들은 바삐 움직이며 도시락과 물을 전달하고 있었다. 바깥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화재가 건물 안에서 발생한 탓에 소방대원들은 잔불을 잡기 위해 힘을 쏟고 있었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쯤 대구시 달서구 감삼동의 한 재활병원 주차타워에서 불이 났다. 재난 대응 1단계를 발령한 소방당국은 인력 170명과 소방차 등 장비 65대를 동원한 끝에 2시간 만에 큰불을 잡았다. 주차타워가 병원 바로 옆에 바짝 붙어있는 구조라 입원 환자 194명 중 193명이 병원 1, 2층으로 대피했다. 중증 환자 1명은 이동이 불가능해 병원 관계자와 함께 대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당시 병원 관계자는 모두 27명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해당 재활 병원은 지하 1층~지상 10층의 대규모 건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았다.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수도 있었던 상황. 촌각을 다투는 사고에도 환자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데는 1시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병원 관계자는 "화재 발생을 인지한 후 환자들을 1시간 이내에 모두 대피시켰다. 엘리베이터도 정상 작동했다"며 "내부가 혼란스러워 취재진 등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의 가족들은 화재 소식을 듣고 놀란 마음에 달려왔지만, 병원 측 통제로 환자를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다. 한 여성은 "어머니께 도시락만 전달하고 오겠다"며 병원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보호자 A 씨는 "뉴스를 보고 많이 놀랐는데, 병원 측에서 연락도 닿지 않아 직접 찾아왔다"며 "아버지가 뇌 때문에 입원 중이고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계실 텐데 무슨 일은 없는지 확인하러 왔다. 잘 계시는 지만 확인하고 싶은데, 병원 관계자들이 입장을 통제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B씨는 "밥을 못 먹어서 잠깐 나가 사 왔는데, 상주 보호자가 아니면 다시 병원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며 "환자가 지금 혼자 있고 제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신다"고 호소했다.
소방당국은 주차타워 내 발생한 차량에 불이 난 게 큰 화재로 이어졌다고 보고 자세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차량 50대를 수용할 수 있는 해당 주차장에는 화재 당시 30여 대가 주차돼 있었으며, 이중 전기차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방 관계자는 "폭발음을 들었다는 신고 내용이 있어 차량 폭발로 인한 화재로 추정되지만, 화재 차량이 전기차인지는 아직 파악이 어렵다"며 "잔불 정리가 끝나야 본격적인 원인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달서구청은 경찰과 소방당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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