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찬극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시민문화부장의 동료 고 최정운 씨

"널 보내던 날 펑펑 울던 후배의 울음이 지금도 선한데…"
"내년 너를 추억하는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 하는구나"

2011년 단편영화
2011년 단편영화 '잡담'에 출연했던 고 최정운 씨의 스틸 사진. 김찬극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시민문화부장 제공.

정운아,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도 궁금하지만 잘 지내고 있으리라 애써 위안해 본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나를 용서해라. 사실 우리 예전에도 늘 이랬었잖아. 문득 생각나면 연락하고 서로 기회가 닿으면 만나고 그러다가 또 바쁘면 각자의 삶을 살고. 그런데 이제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구나. 평범했던 일상이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어리석게도.

니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 2014년 2월 17일, 경주의 한 리조트에서 모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도중 체육관 지붕 붕괴사고로 사망자 10명을 포함해 2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지. 사망자 10명 중 유일하게 그 대학 학생이 아니었고 그저 이벤트사 직원으로만 알려지며 주목받지 못하고 보상에서도 소외됐던 1명, 실은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장래가 촉망되던 대구의 연극인, 그게 바로 너였지.

그날 늦은 밤 걸려오던 전화는 왠지 불길했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달려간 경주의 어느 병원 영안실에 차갑게 누워 있던 너는 내게 아무 말이 없었고 나도 네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구 계성고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너는 문학을 참 좋아했고 공교롭게도 나와 같이 연극을 좋아해서 내가 다니던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학과에 1년 늦게 입학해 동문 후배가 되더니, 대구가톨릭대 무용·공연학과 대학원을 함께 가자고 나를 꼬드겨서는 결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어 대학원까지 함께 다니게 됐었지.

낮에는 예술강사로 학생들 가르치랴 저녁에는 연극 연습하랴 밤에는 또 나하고 말싸움하랴 얼마나 고단했었냐. 대중성을 강조하던 나와 예술성을 중시하던 너는 커피 한 잔 놓고 밤새워 논쟁도 벌이곤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답답하리만큼 우직하고 꾀부릴 줄 모르던 그런 니 모습이 참 좋았다.

대구에서만 10편 이상의 연극 연출에, 배우로 연극무대와 독립영화 출연에, 대구 U대회 스태프 같은 알바까지 틈틈이 하며 정말 분주히 살았었잖아. 그중 2004년에 연출한 '조통면옥'은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아 그해 내가 기획으로 참여했던 전국연극제에 대구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었고, 2007년 '여우와 늑대 사이', 2008년 '사육제'는 니가 연출하고 내가 기획하기도 했었잖아.

정운아, 너는 비록 니가 좋아하고 사랑하던 일과 사람들 훌훌 놓고 먼 길 떠났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를 보내던 날 서럽게 펑펑 울던 어느 후배의 울음이 지금도 선한데, 내년 2월 너 떠난 10주기를 맞아 너를 그리고 너를 추억하는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 하는구나. 그때 성큼성큼 바람처럼 왔다 가려무나. 이제 와 생각하면 아쉬움 한가득하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말자. 그때 우리는 분명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그러니 너도 그곳에서는 부디 자유로운 광대로 훨훨 날아오르렴.

할 말이 참 많은데…. 그립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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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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