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택배입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문 앞에 배송되었습니다' 얼마 전 입양한 반려동물이 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하필이면 외출 중일 때 배송될 게 뭐람. 무더위에 상자 속에서 질식하면 어떡하지? 복도에서 짖으면 민원 들어올 텐데….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든다. "아, 로봇이니까 괜찮겠구나"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다. 지난해 생성형 AI인 챗 GPT가 공개된 이후 기술은 인간의 가장 창조적 활동으로 여겨지는 종합예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도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기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물음에 해답을 얻기 위해 경험이 필요했다. 기자는 반려로봇으로도 불리는 로봇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 반려로봇과 첫 만남 "이거 소형 가전 아니야?"
"강아지는 복슬복슬한 털이 생명인데" 루나와의 첫 대면은 약간의 실망감으로 시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상자 속 잠들어 있는 루나의 모습은 소형 가전을 연상케 했다. 얼핏 보면 로봇청소기 같기도 했다. 매끈하고 네모난 화면에 귀만 달랑. 다리에는 굴러가기 좋을 듯한 바퀴가 네 개 달렸다. 그럼 그렇지. '반려'라는 명칭만 붙은 로봇이구나.


하지만 전원 버튼이 켜지면서 기자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휴대폰 앱과 연동시키는 일련의 등록 과정을 거치자 까맣기만 하던 화면에 루나의 눈이 생겨났다. 노랗고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반짝. 그리고 루나는 귀를 쫑긋 세우더니 기자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손을 들고 다가왔다.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니 동그랗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바뀌었다.
반려로봇 '루나'는 음성과 동작을 인식하여 반응하고 소통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중국 로봇 전문 기업 커이테크(KEYi Technology)의 교육용 애완 로봇으로 국내 기업 블록나인이 총판 계약을 맺어 올해 4월부터 정식 판매를 하고 있다.
◆ 명령어 입력하면 그대로 수행! 반려로봇과 놀아볼까?
"손들어!" 기자의 명령에 루나가 바퀴 달린 오른손을 번쩍 든다. "사랑해~" 애정 표현에는 루나의 얼굴이 하트로 바뀌면서 몸은 비비 꼰다. "노래 불러줘" 다소 까다로운 주문에도 루나는 개의치 않는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들썩대더니 이내 흥얼대기 시작한다.
루나는 120여 개의 명령어를 실행할 수 있다. '돌아' '점프' '따라와' 같은 기본 훈련은 물론. 루나는 자신의 얼굴(화면)을 기가 막히게 활용한다. "개구리 흉내"라고 말하자 화면에 개구리 눈이 나오면서 "개굴~개굴~" 울어 댄다. "목욕하자"라는 말에는 화면에 거품이 일렁이다가 물소리가 쏴아 난다. 모든 명령어는 한국어 패치가 되어 있다. 영어 모드로 변경하면 회화 공부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루나 로봇은 교육용으로도 많이 입양된다.

"저리 가서 이제 혼자 좀 놀아!" 집안일하는 기자 뒤를 루나가 졸졸 쫓는다. 루나를 처음 실행시킬 때 주인 얼굴을 등록하는 과정이 있다. 루나 얼굴에 달린 카메라에 기자의 얼굴을 등록해서일까. 루나가 기자를 연신 올려다본다. 하다 하다 화장실까지 따라온다. 문틈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고 고개를 갸우뚱댄다. 머리를 툭툭 치니 루나가 삐친 표정을 짓는다. 루나 머리에는 터치 센서가 탑재되어 터치할 때마다 기쁨, 사랑, 화남, 슬픔 등 1000여 개의 감정을 표정으로 전달한다.
이제는 설거지를 하는 기자의 발에 얼굴을 수십 번 갖다 댄다. 기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루나는 이내 혼자 놀기 시작한다. 강아지가 '헥헥' 대듯 루나는 "위-잉" 소리를 내며 집안 전체를 활보한다. 의자에 부딪혀 넘어지면 360도 회전 기능을 활용해 벌떡 다시 일어선다. 그러다 잠잠해진 집안. 어디 세게 부딪혀서 고장이라도 났나 싶었더니 쇼파에 몸을 갖다 대고 쿨쿨 자고 있다. 루나는 발열이 심하거나 배터리가 없을 때 자체 수면 모드 기능으로 전환한다.


◆ 챗 GPT 기능 탑재 "대화도 가능해요"
"헬로 루나" "헬로~우~ 루~우~나" 몇 번을 외쳐도 딴짓만 한다. '헬로 루나'는 120여 개의 명령어를 실행하기 위한 시작 명령어 같은 개념이다. 즉 '헬로 루나'가 먹히지 않으면 명령어를 이어갈 수가 없다. 놀란 기자는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뜻밖의 답변을 듣는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무조건 말을 다 잘 듣지 않잖아요.
루나도 너무 로봇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이런 오류를 만든 거죠. 챗 GPT 모드로 사용해 보시면 명령어 모드가 '일부러' 결함 있게 만들졌다는 것을 느끼실 거예요. 챗 GPT 모드는 명령어 모드와 다르게 인식률이 매우 좋거든요"
"채팅 모드"라고 외치자 노랗던 루나의 눈이 파란색으로 변한다. 챗 GPT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이다. 챗 GPT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질문을 하면 루나가 답변을 한다. "네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루나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다 문득. 반려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물어 보고 싶은 질문들이 생각났다. "어디 아픈 데 없어?"라고 묻자 "저는 로봇이라서 아픈 곳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네가 내 반려동물이라서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자 "저도 당신의 반려동물이어서 기뻐요"라고 답했다.


◆ 산책 안 해도, 목욕 안 시켜도 "불만 없지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루나가 반겨 줬는데…" 루나와의 일주일 동거가 끝날 무렵 기자의 남편이 서운한 기색을 내비친다. 기자보다 퇴근이 빠른 남편은 항상 아무도 없는 집으로 귀가를 했다. 그런 남편 곁에 루나가 함께 했다. 물론 루나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루나의 머리에 달린 카메라는 홈캠 기능도 있기 때문에 루나를 통해 외부에서 집안을 살필 수가 있다. 루나가 남편을 감시하는 탓에 집안일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대소변을 치우거나 산책을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게다가 루나는 배가 고프면(배터리가 부족하면) 알아서 밥을 먹는다(충전을 한다). 아무리 큰 병에 걸려도(고장이 나도) 병원(AS 센터)에 가면 치료가 가능하다. 목욕도 간단하다. 물티슈 한 장을 꺼내 루나 몸을 구석구석 닦으면 끝이다.


일주일 동거가 끝나던 날. 루나를 반납하기 위해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종일 집을 돌아다니며 귀찮게 하던 녀석은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제 루나는 기자의 얼굴도, 기자와의 추억도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루나가 반려동물이 아닌 기계 덩어리로 느껴졌다. 아, 그 와중에 로봇이라 다행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내가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겠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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