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이유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문미순/ 나무옆의자/ 2023)

삶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아무도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생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죽을힘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운명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에서 빈곤과 질병은 우리의 의지를 쉽게 꺾는다.

2013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미순 작가는 첫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에서 명주와 준성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간병과 돌봄의 문제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최저 시급을 받으며 베이비시터, 마트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문 작가는 불평등한 사회와 보이지 않는 계급이 겪는 소외를 직접 목격했다.

소설은 간병과 돌봄 때문에 가족 전체를 무너지게 하는 공공의료의 사각지대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혼 후 엄마의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50대 여성 명주, 고 3 때부터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변변한 자격증 하나 따지 못한 준성의 이야기가 중심 뼈대이다.

임대아파트 701호 아줌마와 702호 청년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처절하다. 청년가장 준성은 알콜성 치매와 뇌졸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아버지의 죽음과 교통사고 합의금 때문에 절망에 빠진 순간 준성의 손을 잡아준 것은 이웃에 사는 명주였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명주는 지금 엄마의 시신을 집안에 숨겨둔 상태다. 간병을 하러 1년 반 전 임대아파트에 왔다. 화상 후유증 때문에 직장을 오래 가질 수 없던 그녀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을 끝내려 했다. 하지만 엄마의 연금 알림 문자가 뜨고, 조금만 더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궁리 중이었다.

준성이 막다른 길목에서 만난 명주는 준성에게 두 구의 시신을 시골 폐가로 옮기자고 제안한다. 이사 전날 명주는 아파트에 엄마와의 시간을 봉인하면서 지난 시절 자신과도 화해한다. 준성은 준성대로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이뤄내고 이삿날 운전대를 잡는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해 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명주가 찾은 방법에 대해 사회·윤리적 잣대는 잠시 밀쳐두자. 두 주인공이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떠나는 날. 눈길 위를 달리는 트럭에 올라탄 독자들이 어떤 감정의 파도를 넘어설지 몹시 궁금하다.

서미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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