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님, 회장님을 아는 봉사원들을 대표해서 제가 안부 여쭙니다. 저희들을 떠나간 그 곳에서는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지난 2월 회장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를 포함해 봉사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 기력도 좋았고 건강에 이상도 없으셨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90세 넘은 나이에 움직이기 힘드셨을텐데도 불구하고 늘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 나오셔서 급식봉사를 도와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안타까움만 더합니다.
저희들에게는 정 회장님의 삶이 '적십자 봉사원의 삶' 그 자체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을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 "중년 이후의 삶을 적십자 봉사활동에 바쳤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항상 수수한 차림으로 나오셔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었지요. 그런데 자주 적십자를 위해 작게는 100만원에서 크게는 5천만원까지 거금을 쾌척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늘 수수한 차림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각종 봉사활동에 거금을 쾌척할 정도로 삶에 여유도 있고 게다가 자녀들도 모두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 회장님을 도울 수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남들은 회장님 정도의 재산이라면 갖은 '있는 척'을 해서 눈살이 찌푸려졌을텐데 회장님은 늘 자신을 낮추고 열심히 어려운 이웃을 도와오셨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장님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또 수성구지구협의회를 창설할 때 동 단위로 봉사원들의 모임을 10개나 만들었던 업적도 있으셨지요. 다른 곳에서는 1개 봉사모임 만드는 것도 힘겨워했는데 10개나 조직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은 어떤 '리더십'도 볼 수 있었던 듯합니다.

단위 봉사회를 만들면서 이름에 '한'을 돌림자처럼 넣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아름, 한사랑, 한마음…. 돌림자를 '한'으로 한 건 '봉사원들 모두가 한 식구'라는 뜻을 담았기 때문이었지요. 지금도 '한 식구'라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저 또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원들이 기금을 만들어 '한뜻장학회'라는 걸 만들었고, 지역 내 많은 학생들이 장학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도움받은 학생들이 "보답하고 싶다"며 기금을 보태는 모습을 볼 때 회장님이 뿌린 씨앗이 자라는 걸 보는 듯해 마음이 너무 뿌듯합니다.
회장님 장례식 때 빈소에서 저보다 더 많이 회장님의 별세를 안타까워하고 눈물짓던 이가 있었습니다. 하숙자 봉사활동 자문위원회장이었지요. 늘 회장님은 본인이 직접 몰던 자동차로 늘 물건도 실어나르고 봉사원들도 태워다 주곤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한 번 교통사고가 나서 큰 일 날 뻔한 적이 있었지요. 그 때 운전을 그만두시면서 이후 회장님의 이동을 하숙자 자문위원회장이 도와줬었지요. 그 때 많은 정이 들어서였는지 하숙자 자문위원회장이 빈소에서 참 많이 울더군요.
회장님과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을 봤습니다. 자문위원회장을 했던 이들끼리 모임이 있었던 어느 날, 의상실을 한다던 한 전직 회장님의 건의로 모인 사람들끼리 의상실에 있던 드레스를 입고 찍었던 사진입니다. 그 속에 살구빛 드레스를 입고 계시던 회장님은 정말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이제 다시 그 환한 웃음을 볼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살아계실 때에도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사셨고, 그 삶을 즐기고 좋아하셨던 모습을 저를 비롯한 적십자 봉사원들 모두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회장님이 보여주셨던 삶의 가르침을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어나가겠습니다. 회장님, 참으로 그 넉넉한 모습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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