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귀농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이곳 이재민들은 또 다시 내리는 비 소리에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
전기와 수도는 물론 도로까지 끊겨 고립된 생활을 이어온 이 마을 주민들은 19일까지 비가 예보되자 2차 피해에 대한 우려와 근심을 감추지 못했다.
18일 오전 10시쯤 찾은 이곳 마을은 입구부터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곳곳에서는 부서진 도로 복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간신히 차량이 지날 수 있는 임시도로는 쓰러진 나무와 토사로 아수라장이었다. 운전자들은 나뭇가지와 돌을 피해 곡예 운전을 했다.
끊어진 도로 복구현장을 지나 도착한 학산리회관에는 어르신 7명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이제 덜 오겠지"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15일부터 내린 비와 산사태를 피해 마을회관을 피신처로 찾고 있다.

어르신들은 모두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15일 새벽을 잊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밖에서는 '쾅쾅'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데 밖을 내다보는 것 외엔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권윤자(75) 씨는 "밤 12시, 1시까지는 좀 작게 들렸는데, 새벽 2시가 넘어가니 돌고래 소리 같은 게 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며 "그날의 공포탓에 지금도 주위가 어두워지고 빗소리가 세게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너무 무섭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수해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아직 이 마을의 피해복구는 요원하기만 하다. 끊겼던 도로는 지난 17일 오전 가까스로 임시 복구만 된 상태고 아직까지 전기와 수도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집들도 대다수다.
며칠째 회관에서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장영선(81)씨는 "이곳에 대피한 사람들의 자식들이 돌림노래 마냥 전화가 와 안전한 곳으로 오라고 하지만 집이 걱정돼 어디 멀리갈 수도 없다"며 "이번 수해로 안그래도 사람이 없는 마을이 폐허마냥 텅 빈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실제 취재진이 학산리회관에서 약 2km 떨어진 인명피해 사고현장을 향하는 동안 집에도, 도로에도 사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50대 귀농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기와집은 지붕이 내려앉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 주위로는 수 십 그루의 나무와 바위, 진흙 등이 뒤섞여 사고 당시의 파괴력을 실감케 했다.
부부가 가꾸던 농장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사과농장이 있던 자리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흙은 빗물을 머금고 죽처럼 끈적해졌고, 지나가는 이의 발이 뻘 속으로 10cm씩 빠졌다. 기와집과 약 200m 떨어진 산에서는 이번 산사태 이후 도랑이 생겨 물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70년 동안 살았다는 김용수(83) 씨는 "이번에 사고가 난 곳은 예전부터 개울물이 내려오던 '물길'이었다"며 "비가 많이 내리면서 산꼭대기에서부터 무너져 나무 뿌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속도가 붙으면서 결국 100m도 더 떨어진 집을 덮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봉화군은 공무원·군인 등 인력 1천410명과 굴삭기·덤프트럭 등 장비 1천대를 동원해 복구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봉화군 관계자는 "현재 피해 현황을 조사하는 단계에 있으며 다음주쯤 복구 대책이 나올 것 같다"며 "특히 상황이 심각한 지역에 자원을 투입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